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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우크라 값싼 농산물·노동력, 우리를 찌른다..." 마냥 환대할 수 없는 주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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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2년, 비극과 모순]
우크라이나 돕던 폴란드의 '분노'
"계속 돕다가 우리가 피해 볼라"

편집자주

전쟁은 슬픔과 분노를 낳았다. 길어진 전쟁은 고민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우크라이나와 이웃국가의 삶과 변화를 들여다봤다.
한국일보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 등에 반대하는 폴란드 농민들이 20일 폴란드 북부 엘블롱크에서 트럭에 실린 비료를 도로 위에 쏟아버리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엘블롱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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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잇는 메디카·셰히니 국경. 정차해 있던 열차 화물칸에서 별안간 곡물이 쏟아졌다. 바닥에 무수히 쌓인 곡물은 우크라이나산. 이런 일을 벌인 건 폴란드 농민들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농민 시위대는 폴란드 국기를 펄럭이며 외쳤다. "여기는 브뤼셀(유럽연합을 상징)이 아니라 폴란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는다."

들끓는 분노는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면세 등 특혜를 받은 채 폴란드로 유입되면서 폴란드 농민을 말라 죽이고 있다."

폴란드 운송업자들도 같은 이유로 분노 중이다. 유럽연합(EU) 허가 없이 국경을 오가는 저임금 우크라이나 운송업자 진입을 막겠다며 이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 봉쇄를 반복하고 있다. 20일에도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던 화물차 약 2,900대가 도로에 갇혔다. 급기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 성명을 내고 폴란드와 EU 지도자에게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제안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한국일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폴란드 농민들의 시위로 인해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트럭에서 쏟아져 바닥에 쌓여 있다. 해당 곡물은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가는 길이었다고 폴란드 언론 넥스타는 전했다. 넥스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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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우크라 상품, 안 받아"… 주변국 '분노'


전쟁 후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운 국가 폴란드. 당시 우크라이나를 향해 누구보다 마음을 활짝 열었던 폴란드는 이제 마음을 닫는 선봉에 섰다. 폴란드는 유럽 내에서 비교적 저렴한 상품과 노동력을 경제 성장 무기로 삼아왔는데, '더 경쟁력 있는' 우크라이나가 나타나면서 위기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폴란드와 같은 상황인 슬로바키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체코 등 동유럽권 농부들도 연대 시위를 준비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수도 키이우에서 자국 기업의 유럽 진출을 지원하는 '유럽비즈니스협회' 안나 데레비얀코 전무이사는 "발단은 '러시아의 침략'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말했다. "전쟁 후 우크라이나 경제가 망가지고 흑해 경로 등 기존 비즈니스 방식을 못 쓰게 되면서 폴란드로 이어지는 육로로 농산물이 수출되고 운송업자가 오갔다. 그럼에도 특혜, 불공정 거래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황스럽다."
한국일보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안나 데레비얀코(왼쪽부터) 유럽비즈니스협회 전무이사, 스티븐 블록만스 유럽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피터 스타노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수석대변인. 각 기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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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피로감에 여론도 '떨떠름'


부정적 감정은 우크라이나 난민에게도 뻗쳤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사는 한나 코왈스카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은 찬성한다"면서도 "폴란드인이 우선순위에서 밀릴까 걱정은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 마친은 "우크라이나인이 폴란드인과 동일한 지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이 500즈워티(약 16만5,000원)의 자녀 수당 등 보육, 교육, 의료 분야에서 폴란드 시민과 같은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푸념도 나온다.

폴란드 컨설팅업체 '퍼스널서비스'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폴란드인 22%가 '우크라이나인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3월 같은 조사보다 8%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한국일보

도날트 투스크(왼쪽) 폴란드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 학생들과 만난 뒤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키이우=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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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전쟁에 갈등 커질라'...우려 확산


이러한 갈등은 주변국으로 확산할 소지가 크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피로감이 눈에 띄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 연초 프랑스 등 서유럽 농민들이 거센 거리 시위를 한 주된 이유 중 하나도 '대(對)우크라이나 혜택 축소'였다. 벨기에 기반 싱크탱크 유럽정책연구센터의 스티븐 블록만스 선임연구원은 "전쟁 국면에서의 경제적 지원, 재건 사업 투자 등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경제력을 EU 평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전반적인 과정에서 정치적 압박은 계속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러한 갈등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라는 낙관도 적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EU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인데, 이는 과거 다른 회원국이 EU에 가입할 때도 있었고 결국에는 해결됐다는 점에 근거해서다. 피터 스타노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변인은 "러시아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유럽이 변함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한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샤바ㆍ키이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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