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조각가가 내준 157점을 바탕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기증실이 마련됐다.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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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턱 아래 모은 소녀가 애틋한 표정으로 서 있다. 한국 치마저고리를 단순화한 차림새에 곁들인 날개가 ‘천사’라는 걸 알린다. 또 다른 조각상은 아이들의 장난감 블록을 조립한 듯 눈·코·입만으로 절제된 형상이지만 ‘기도하는 사람’의 경건함이 배어난다. 장승인 양 반듯하게 깎아 매만진 ‘성모자상’에선 종교와 국경을 초월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와닿는다.
전통 미감을 계승하고 현대화해 가장 한국적인 종교 조각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 최종태(92·서울대 명예교수) 작가의 작품들이다. 그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창작해온 성모상·성모자상·십자가상과 2000년대 이후 다채롭게 시도한 채색 목조각, 회화, 드로잉 등이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에 한데 모였다. 최근 박물관과 협의에 따라 작품 157점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증하면서다. 박물관은 지하 1층에 기증실을 마련하고 지난 15일 ‘영원을 담는 그릇’으로 이름지은 기념전의 개막식을 열었다.
“작품 둘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해서 아낌없이 내줬다”고 하는 그를 개막식에 앞서 13일 기증실에서 만났다. 청력이 떨어진 백발의 작가는 대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팡이를 짚은 채 전시 준비 상태를 꼼꼼히 둘러봤다. “작품에서 장욱진(1917~1990)의 화풍이 느껴진다”고 말을 건네자 눈을 반짝이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내게 스승이 세 분 있는데, 중학교 때 나를 미술로 이끈 선생님 외에 두 분이 (서울대 조소과에서 사사한) 김종영(1915~1982)·장욱진이다. 그렇게 깨끗하게, 평생 예술만 하신 분들이 없다. 나도 그분들과 어울리려 다른 욕심 안내고 살았다.”
그는 1973년 절두산 성지에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을 만들면서 가톨릭 조각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현재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자의 가족상이다. “1958년에 영세 신자가 됐어도 종교를 작품에다 대입하려고 안 했다. 그냥 내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80년대부터 (요청에 따라) 성당 미술을 많이 하면서, 성당 미술은 토착화하고 불교 미술은 현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감이 잘 드러난 게 성북동 길상사의 관음상(2000)이다. 마치 성모마리아를 연상시키는 단아한 입상이 신라 불상 특유의 삼산관을 쓰고 있다. 오랫동안 관음상을 만들고 싶어 하던 차에 법정(1932~2010) 스님 요청으로 빚은 작품이다. “김수환 추기경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내가 불상 만들면 파문할 거냐고. 그랬더니 추기경이 ‘일본에서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관음상을 놓고 기도했다’면서 걱정 말라고 했다. 법정 스님의 요청을 받고 3시간 만에 뚝딱 형상이 나왔다.”
명동성당 예수상(1987) 등을 비롯해 숱한 성상(聖像) 조각을 했지만 “종교와 예술이 90이 되어서 만나는 것 같다”고 했다. “젊었을 땐 소녀상을, 80년대 이후로 성당 조각을 하면서 성모상을 했는데, 90 되면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서양에서 200년 전 예술이 종교로부터 갈라섰다. 젊어서 그게 고민이었고, 언젠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면 좋겠다 했는데 이제 편안하다.”
로비 공간에 약 101㎡ 규모로 조성된 기증실은 1차적으로 30여점을 선보이고 향후 교체 전시하게 된다. 전시는 무료.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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