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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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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바람을 일으켜라"…이준석, 日정계 풍운아와 닮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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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멎었다면 뛰어가 바람을 일으켜라. 그래도 안 된다면 절벽에서 뛰어내려서라도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라.”

일본의 정치가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82)가 했던 말입니다. 그는 일본에서는 풍운아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정계의 거물입니다. '정치 기대주→여당 탈당→야당 창당→대연합→정권 교체'를 이어간 그의 정치 궤적은 별칭답게 화려합니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도 일부나마 닮은꼴인 인물이 있어 더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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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4일 국민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후 인터뷰를 하는 오자와 이치로 의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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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20대 정계 입문,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



오자와는 부친을 이어 1969년 이와테현 제2구에서 승리해 27세에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당시 정계 거물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에게 발탁돼 승승장구했고, 47세 때 역대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에 오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자민당 간사장(한국의 당 사무총장)은 총리로 가는 요직으로 통합니다. 오자와도 1991년 가이후 도시키 총리가 물러났을 때 후임 총리로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이(49세)가 너무 젊다며 고사합니다. 당시엔 그도 몰랐겠지만, 이는 오자와가 총리에 오를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②친정에 칼 겨눈 신당 창당



20대 정계 입문, 40대 간사장, 파벌의 리더…

오자와는 자민당의 미래이자 차세대 리더이자 차기 총리 유력주자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죠.

1992년 자민당의 유력 파벌 다케시타파의 신임 회장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은 그는 ‘개혁포럼 21’이라는 파벌을 만들어 개혁파 비주류를 자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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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간사장,이원경 주일대사와 악수,논란을 빚은 자신의 발언을 사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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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민당은 버블경제 시대의 종언, 정경유착 비리(‘리크루트 사건’) 등으로 휘청거렸습니다. 때마침 1993년 정치개혁법이 좌초하자 사회당 등 야당은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했습니다. 이때 오자와는 ‘개혁포럼 21’ 소속 의원들과 총리 불신임에 찬성표를 던지는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이 속한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려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 찬성 255 : 반대 220으로 가결)

파격 행보는 이어졌습니다. ‘개혁포럼 21’ 소속 36명의 중의원을 이끌고 아예 자민당을 뛰쳐나온 그는 신생당(新生黨)을 창당하고, 1993년 총선에서 55석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하며 정계를 다시 한번 흔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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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55석을 얻으며 선전하자 기뻐하는 오자와 이치로. 중앙포토


정당의석 수
자유민주당 223
일본사회당 70
신생당 55
공명당 51
일본신당 35
민사당 15
일본 공산당 15
신당 사키가케 13
사회민주연합 4
무소속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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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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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노선 다른 정당과 연합해 세불려



그동안 일본 정계를 양분했던 자민당(223석), 사회당(70석) 모두 과반에 실패해 향후 정권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된 상황.

오자와는 발 빠르게 움직여 또 다른 자민당 탈당파인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일본신당(35석), 하토야마 유키오의 신당 사키사케(13석)에 사회당·공명당·민주사회당·사회민주연합 등 7개 정당을 묶어 정권을 접수합니다. ‘55년 체제(1955년 보수정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자민당이 여당, 사회당이 제1야당을 맡아온 시대)’라 불리는 자민당 집권기가 시작된 이래 38년만의 정권 교체였습니다. 상반된 노선의 정치체가 연합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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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25일 일본에 방문중인 김영삼 대통령이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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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자와는 정권 교체로 친정에 복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원하던 총리는 못 했습니다. 7당 연합을 위해 총리는 일본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에게 양보하고 ‘킹메이커’로 만족했던 겁니다. 이후에도 오자와 이치로는 몇 차례 창당과 해산을 거듭했고 2007년에는 민주당으로 옮기며 또 한 번 정권 교체를 실현하는 등 풍운아의 길을 이어갔습니다.



이준석과 개혁신당의 미래는?



오자와 스토리는 어쩌면 개혁신당의 닻을 올린 이준석 공동대표의 이상적 모델일지도 모릅니다. 거대 여당을 박차고 나와 신당의 깃발을 들고 총선에서 선전하고 정권 교체까지 일궜으니까요.

이 대표는 2011년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으로 깜짝 발탁해 26세의 나이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젊음, 미국 하버드대 학벌, 톡톡 튀면서도 논리 정연한 언변 등으로 보수정당의 차세대 리더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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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1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자가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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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바른정당·바른미래당으로 다른 길을 걸었음에도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당대표에 오른 것은 보수정당의 미래 주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에서 패배,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김용태는 국민의힘 복귀)’을 이끌고 이탈, 개혁신당 창당, 이질적 노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미래(이낙연 전 총리 등)와 새로운 선택(금태섭·류호정 전 의원 등)과의 연대는 사회당과 연대한 오자와의 행보를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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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원칙과상식 조응천 의원, 새로운선택 금태섭 공동대표 등이 2월 9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설 귀성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은 오자와보다 열악합니다.

▶정치력=오자와의 탈당은 의원 36명이 함께 했지만, 이 대표가 탈당할 때는 현역 의원이 허은아 전 의원 1명뿐이었습니다. 오자와는 총선에서 단독 세력만으로 55석을 쥔 덕분에 정계개편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지층 반발=오자와는 7당 연대로 정권교체까지 성공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많은 난관이 따랐습니다. 결국 각종 법안에서 의견이 부딪혔고, 정권 출범 1년도 안 돼 붕괴했습니다.

개혁신당도 벌써부터 다른 노선을 어떻게 정리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미 이준석 대표의 열성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서는 민주당·정의당 출신 정치인과의 합당에 실망감을 표하며 지지 철회를 선언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양극화·팬덤화=1993년 일본의 총선 때는 자민당 일당 독주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정서가 짙었고, 이들 중 다수가 오자와의 신당으로 향했습니다. 출범 초기 비자민당 내각 지지율은 74%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6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개혁신당의 정당 지지도는 4%로 나타났습니다. 갈수록 양극화되고,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제3세력이 제대로 발을 뻗기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구태 정치 타파를 내걸었지만, 행보가 이를 뒷받침 못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양당을 대체할 참신함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선거 전 원칙 없는 세력 끌어모으기는 중도층에게 어필할 자산을 깎아 먹는 셈”이라고 지적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를 언급했던 이 대표. 그는 지금 지지층의 반발과 정치 양극화라는 이중고를 해결할 솔루션을 갖고 있을까요.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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