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상회의 대화 언급…‘집단안보 개념’ 무력화
재집권 땐 한국 압박 가능성…EU 등 “무모” 비판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코스털 캐롤라이나대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중 자신이 참석한 과거 나토 정상회의에서 오갔던 대화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한 정상에게 ‘만약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보호해 주겠냐’는 질문을 받았다면서, “나는 ‘당신은 돈을 내지 않았으니 채무불이행’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러시아)이 무엇이든 내키는 대로 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당신들은 돈을 내고, 청구서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부터 나토 회원국이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으면서 미국에 의존한다는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날은 무임승차를 비난하는 수준을 넘어 나토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전체 회원국이 함께 대응한다는 집단안보 개념 자체를 무력화하는 발언을 내놨다.
유럽연합(EU)과 동맹국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 성명을 내고 “동맹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면 미국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안보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나토의 안보와 관련한 무모한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의 반응이 “이례적이고 즉각적”이었다면서 “유럽 지도자들이 미국 대선이 불안한 세계에 미칠 영향을 얼마나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일 성명을 내고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잇단 비난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1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출 형태가 아닌 이상 어떤 나라에도 대외 원조 자금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현직을 통틀어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적국이 동맹국을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는 식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며 “이런 수사는 만약 그가 다시 당선될 경우 국제질서에 광범위한 변화를 맞이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NYT는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을 의지할 수 없게 된다면 과거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한국의 방위비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그는 퇴임 직후인 2021년 인터뷰에서 ‘내가 집권한다면 한국에 주둔 미군 유지를 위해 매년 수십억달러를 더 지불하라고 요구하겠다’고 밝혔다”면서 “그의 두 번째 임기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우선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BBC는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지지자들을 흥분시키는 그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나토와 서방이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여름 공세 실패로 위기를 맞은 상황을 고려하면 “위험한 시기에 나온 위험한 발언”이라면서 “푸틴이나 시진핑과 같은 미래 침략자가 미국의 동맹국 방어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오판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동맹들의 ‘무임승차론’에 대해서는 사실 왜곡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006년 나토 회원국들은 각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로 합의했으나 이는 국방예산을 충분히 확보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의미였을 뿐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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