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입성 셀린 송 감독 "기생충·K팝·K드라마가 열어준 길"

국내 언론과 화상 인터뷰…"이민자라는 정체성, 누구나 공감할 수 있어"

"'패스트 라이브즈'로 인연 개념 알려져 기분 좋아…한국 개봉도 너무 설레"

'명예 오스카상' 시상식 참석한 셀린 송 감독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볼룸에서 열린 '거버너스 어워즈'(Governors Awards)에 도착하고 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주관하는 아카데미 거버너스 어워즈는 '명예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공로상 행사다. 2024.01.10 bestho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어 대사가 많은 영화라 미국에선 (상영할 때) 자막이 떠요. 이런 영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길을 열어준 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에요. 한국 영화나 한국적 요소가 많은 영화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거죠. K팝과 K드라마도 그런 길을 열어줬고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영화계 최고 권위의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 입성하게 된 한국계 셀린 송(36) 감독은 6일 국내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비롯해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븐 연이 주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이 최근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포함해 8관왕을 하는 등 한국계가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송 감독의 연출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음 달 10일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라 있다. 한국계 여성 감독이 첫 영화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송 감독은 "첫 영화이자 데뷔작이라, 영광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적 요소를 가진 영화나 한국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는 건 너무 좋은 일"이라며 웃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송 감독은 "한국어를 잘 못하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그의 한국어는 거의 막힘 없이 자연스러웠다.

송 감독은 "제가 가진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꼭 한국과 연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가진 것"이라며 "이사를 해 새로운 곳으로 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남녀가 20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타 리와 한국 배우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 송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썼다.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이라는 배경과 한국어와 같은 요소가 매우 많은 영화를 만들게 됐다"며 "영화를 찍으면서 한국에 돌아가 과거를 돌아보고, 내가 한국에 두고 온 것들도 많이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극작가로 활동해온 송 감독은 영화 연출을 하게 된 데 대해 "('패스트 라이브즈'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드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륙을 가로지르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가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선 한국적 관념인 인연이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영화에선 한국 출신의 등장인물이 미국인에게 인연이란 말을 설명해주는 장면이 있다.

송 감독은 "이 장면 덕분에 관객은 인연이란 개념을 알게 된다. 새로운 단어를 접하는 즐거움도 느끼게 되는 것"이라며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그 단어를 쓰고, 나에게 찾아와 인연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해줄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판타지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여러 시공간을 지나면서 신기한 순간이나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송 감독은 한석규·최민식·송강호 주연의 영화 '넘버 3'(1997)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기도 하다.

그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된 데 대해 가족의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엔 "진짜 너무 신나고, 온 가족이 그냥 너무 좋아했다"면서 "가족의 반응을 물을 때마다 재밌거나 특이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솔직히 단순하다. 그냥 행복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라며 웃었다.

지난해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제58회 전미 비평가협회 작품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오는 18일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남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에 올라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CJ ENM과 할리우드 영화사 A24가 공동으로 투자 배급한다. 국내에선 다음 달 6일 개봉 예정이다.

송 감독은 "내가 태어나 열두 살까지 자란 한국에서 '패스트 라이브즈'가 개봉하는 게 너무 영광스럽고 기쁘다"며 "빨리 한국에 가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어떻게 봐주실지 너무 긴장되고 설렌다"고 말했다.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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