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식량 허브' 도매시장 봉쇄 시도…정부와 충돌 일촉즉발
EU, 농민 분노에 휴경 의무 한시 면제·우크라산 '세이프가드' 추진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트랙터 시위대 일부가 31일(현지시간) 파리 남부 외곽 렁지스 국제도매시장 입구에 도달했다. |
(파리·벨기에=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트랙터 시위대 일부가 전국 최대 규모의 농산물 도매시장 입구까지 다다르며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시위대의 시장 접근과 봉쇄를 막기 위해 장갑차를 추가 투입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한편 유럽연합(EU)에 농민 설득방안을 요구하고 나섰다.
31일(현지시간)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 출발한 농민 트랙터 시위대 일부가 이날 오전 파리 남부 외곽에 있는 렁지스 시장 남쪽 입구에 도착했다.
이들은 입구 봉쇄를 시도하다 경찰에 제지당했고 이 과정에서 15명이 교통 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 외에 현재 남부에서 올라온 트랙터 시위대는 렁지스 시장으로 연결되는 6번, 10번 고속도로에서 경찰차, 장갑차 등과 일정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이날 프랑스2 방송에 "(농민들에게) 파리에 들어가지 말고 렁지스를 막지 말고 공항도 막지 말라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며 "이를 어기거나 경찰을 공격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농민들은 렁지스 시장을 봉쇄해 정부를 압박하겠다며 도로를 느리게 달려 차량 흐름을 정체시키는 '달팽이 작전'으로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이 시장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국제 농산물 시장으로, 수도 파리의 식량 허브 역할을 한다. 이곳이 막히면 유통업체, 식당 등의 재료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긴다. 실제 시위대의 접근 소식에 평소의 2∼3배 물량을 구입해 비축해두는 식당 주인도 늘고 있다.
시장 인근엔 오를리 국제공항도 있어 자칫 항공편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
시위대가 렁지스 시장을 타깃으로 삼은 건 값싼 외국산 농산물 수입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농민들은 EU와 정부의 각종 규제를 지켜가며 농작물을 재배·판매해봐야 결국 시장에선 낮은 관세로 들어오는 외국산에 밀린다는 불만이 크다.
(파리 AP=연합뉴스) 경찰과 장갑차 등이 3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남부 외곽 렁지스 국제도매시장 입구에서 농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
농민들의 분노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자 프랑스 정부는 EU의 농업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EU 측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마르크 페스노 농업부 장관은 이날 아침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론적으로 농부들이 EU의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라 지원받으려면 농경지의 4%를 휴경해야 하는데 이 비율을 3%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농민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에 대해서도 "곡물, 설탕, 가금류에 수입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도 라디오에서 "EU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 농민에게 좋지 않다"며 "이 협정에 서명할 수도 없고 서명해서도 안 된다"고 EU를 압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내달 1일 EU 특별정상회의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메르코수르와의 FTA 반대 등 농민들 의사를 강하게 전달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벨기에, 폴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 각국에서 농민의 분노가 들끓자 EU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르가리티스 스히나스 EU 부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우크라이나·몰도바산 수입품 급증에 대비한 조치를 발표했다.
품목 상관없이 특정 회원국의 요청이 있으면 시장 가격 왜곡 여부를 조사해 시정 조처를 제안하고 닭고기, 설탕 등 한시적 면세 조처를 받는 품목의 수입량이 지난 2년치 평균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EU 집행위는 농민들의 또 다른 불만인 '휴경지 4%' 의무도 올 한해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조치는 EU 전체 27개국의 최종 합의가 있어야 확정된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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