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몇 선 이상 나가라는 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 일률적으로 말할 문제가 아니다. 출마해서 이길 수 있는 분들, 명분 있는 분들은 (총선에) 나가셔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부산에서 열린 현장 비대위원회의에서 총선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안을 의결한 뒤 이같이 밝혔다. 한 위원장은 "공천 시스템은 룰로 정해져 있고 룰에 맞출 것이다. 이기는 공천, 설득력 있는 공천, 공정한 공천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역 의원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는 분위기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 뒤 국민의힘 의원들은 '물갈이론'에 떨고 있다. 매 총선마다 물갈이는 있었다. 이번에 유독 의원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한 위원장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이른바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고 오히려 이에 저항하고 있는 점도 의원들을 불안케 한다. 한 위원장은 당내 인맥이 거의 없다. 공천 실무를 챙길 사무총장에 중진을 기용해온 전례를 깨고 초선 장동혁 의원을 파격 발탁했다.
한 당내 인사는 "외부인이 공천하는 게 더 무섭다. 평소 알던 사람은 타협이나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외부인은 가차없이 칼을 휘두를 수 있다"며 "선수를 신경쓰지 않는단 건 오히려 어떤 '안배' 없이 선수를 보지 않고 자르겠단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문제는 누굴 내치는냐다. 공천이 시스템화되지 않은 한국 정치 상황에선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의원들도 '물갈이'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의정활동이 곧 공천으로 연결되지 않으니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기보다 '생계'를 위한 줄 대기에 급급하기 쉽다. 1987년 민주화 후 9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 정당이 30~40% 수준의 '공천 물갈이'를 했지만 국회 수준이 갈수록 높아졌냐는 물음엔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실력과 경륜을 갖춘 베테랑 의원들을 세대교체란 명분 아래 모조리 도매금으로 내쳐선 안 된다. 새 얼굴만을 내세우는 이미지 정치의 한계는 그간 충분히 드러났다. 한 정치권 인사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한 미국은 현역 물갈이 비율이 우리보다 현저히 낮지만 국회의원 수준이 훨씬 높다"며 "국회의원들이 당대표가 아닌 국민 눈치를 보면서 일하도록 공천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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