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예멘 알 살리프 해안에 총기로 무장한 후티 반군 대원들이 소형 보트에서 내리고 있다. 이들 뒤로는 지난달 19일 나포한 선박 '갤럭시리더호'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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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교역로의 핵심인 홍해-수에즈 운하 항로가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민간 선박을 연쇄적으로 공격하면서 해외 유명 해운사에 이어 생산량 규모 세계 2위인 영국 석유 기업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도 홍해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물류와 에너지 운송 대란 우려가 커지자 미국은 관련국과 홍해 안보 문제를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BP는 이날 “홍해 항로의 안보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홍해를 통과하는 모든 운송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은 이미 홍해로의 배 운항을 잠정 중단하고 있다. 세계 2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가 지난 15일 일시 운항 중단을 발표한 데 이어 세계 5위 독일 하파그로이드도 홍해 운항을 멈췄다.
글로벌 3대 해운동맹 중 하나인 디얼라이언스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여기에 소속된 한국 해운사 HMM와 대만 양밍해운 등도 이 방침을 따랐다. 스위스 MSC, 프랑스 CMA CGM, 벨기에 유로나브VN 등 유럽 선사들도 줄줄이 홍해에서 무역선 운항을 끊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
대신 이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을 항행하는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 노선보다 9000~1만㎞를 더 항행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물류비용은 약 20%, 항해 기간은 7~14일 더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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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공격에 홍해 ‘교역 마비’ 우려
지난 14일 예멘 인근 아라비아 해에서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불가리아 선박 MV 루엔호.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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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해운사와 석유회사가 홍해 운항을 중단한 건 이곳에서 예멘 반군 후티가 지속적으로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있어서다. 후티는 지난달 19일 홍해에서 운항 중이던 일본 해운사 소속 선박 ‘갤럭시 리더’ 호를 나포한 이후 홍해를 지나는 선박 최소 10척을 공격하거나 위협했다.
명분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응징이다. 후티 반군은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인 자이드파 소속 대원으로 주로 구성돼 있으며,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지원 속에 수도 사나를 비롯한 예멘 서부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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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와 수에즈 운하 노선은 유럽 시장과 연결된 핵심 해상 교역로다.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상품 무역량의 12%를 차지한다. 페르시아만에서 생산된 원유와 천연가스가 유럽과 북미로 수출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으로 글로벌 물류비용의 급등이 우려되는 이유다. WSJ에 따르면 현재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 수가 하루 평균 17척에서 14척으로 준 정도지만, 홍해 지역의 운항 중단이 지속되면 물류 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 지난 14일엔 한국 화물을 싣고 튀르키예로 향하던 불가리아 벌크선 ‘MV루엔’호가 아덴만에 진입하기 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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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유조선 통금되면 “유가 치솟을 수도”
프랑스 해운 대기업 CMA CGM의 컨테이너선 ‘CMA CGM 팔레 로얄’이 지난 14일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만을 항해하고 있다. CMA은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 이후 홍해를 횡단하는 컨테이너선의 운항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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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은 “글로벌 해운사와 석유 기업 등 화주들이 홍해지역 운항을 중단하면서 유가와 운송 보험료가 급등하고 있다”며 “BP의 운항 중단 결정 이후 다른 해운 및 무역회사들도 뒤따를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대니얼 하리드 수석 분석가도 “이번 마비 사태가 며칠 이상 지속된다면 (해상운임 상승으로) 공급망의 추가적인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홍해는 걸프 해역에서 생산된 원유와 천연가스가 유럽과 북미로 수출되는 주요 통로다. 상황이 악화하면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잇는 수메즈 송유관까지 연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선박중개업체 EA깁슨의 리처드 매튜스 연구 책임자는 “만일 홍해가 유조선 통행금지 구역이 되면 유가와 유조선 운송료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유가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72.47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1.46% 상승했다. WTI 가격은 홍해 항로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지난 12일 배럴당 68달러에서 지속해서 상승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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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다국적 함대’ 창설에 후티 “이스라엘배 외엔 안전”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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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상황이 악화하자 미국은 주변국과 공동 군사 대응에 나섰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날 이스라엘을 방문해 홍해와 아덴만의 안보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번영의 수호자 작전’의 창설을 발표했다. 여기엔 미국을 비롯해 영국, 바레인,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세이셸, 스페인 등 10개국이 참여한다.
오스틴 장관은 “최근 예멘발 후티 반군의 무분별한 공격 격화는 교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협하고, 무고한 선원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이는 집단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국제적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합해군사령부(CMF) 산하 기동부대 CTF-153의 지휘 하에 홍해 안보에 초점을 맞춘 중요한 새로운 다국적 안보 계획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CMF는 중동 지역 해상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만든 다국적 해군 연합체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총 39개국이 참여 중이다. 오스틴 장관은 이날 40여개국이 참여하는 장관급 화상회의에서 관련국들의 CMF 참가를 요청했다. 그는 또 이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작전을 저강도 전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19일 예멘 후티 반군의 무장대원이 홍해에서 화물선 '갤럭시 리더'에 올라타 조타실을 습격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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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움직임에 후티 측은 반발하면서도 이스라엘 소유가 아닌 선박은 공격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후티 최고정치위원회의 무함마드 알부하이티는 이날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구성해 홍해에 파견할 어떠한 연합체에도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후티 반군의 모함메드 압둘살람 대변인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이스라엘에 속한 배가 아니라면 홍해를 항행하는 선박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후티를 지원하는 이란도 미국의 움직임에 날을 세우고 있다. 앞서 14일 모하마드 레자 아쉬티아니 이란 국방장관은 “(미국이) (연합 군사 활동이란) 비이성적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들은 놀라운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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