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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 (금)

[동아광장/박상준]2030이 5060을 넘어서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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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나라의 모든 권력 잡은 5060

여전히 인구 중 비율 높고 권력도 강력해

2030 이대로 눌려서 시들어갈까 걱정이다

동아일보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내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2년을 거의 밖에 나가지 못했다. 몸이 점점 굳어갔기 때문이다. 몇 개월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 방에 들어갔더니 책상 위에 전단지가 있었다. 공산당에 나라가 넘어가게 생겼다는 문구를 보니 태극기 부대의 전단지 같았다. 그게 왜 거기 있었을까? 아마 아버지 지인 중 누군가가 병문안을 올 때 들고 왔던 것 같다. 서랍에 있던 것을 아버지가 꺼내 보고 책상에 놓아 두었다가 나에게 들킨 것이다. 아버지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치우지 말고 그대로 두라 했다. 나는 애초에 그 전단지를 치울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 지인 중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외부 세계와 연결해 준 것이 고마웠다.

아버지가 열여섯 살 때 6·25전쟁이 터졌다. 성년이던 아버지의 형이 징집되었고 아버지는 형이 전쟁터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떨었다. 아버지는 산골 마을에 살았는데 일가 친척 중에는 공비에게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당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소년기의 경험은 아버지에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버지는 빨갱이를 증오했다.

나는 대학에 오고 나서야 광주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를 들었다. 박정희 시대에 노동자를 위해 싸우던 종교인들이 빨갱이가 아니었다는 것도, 12·12 사태가 구국의 결단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교육과 언론에 대한 불신, 독재에 대한 증오, 빨갱이 혐오에 대한 조소는 나와 내 세대의 의식에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내 세대, 지금의 5060세대는 내 아버지 세대가 빨갱이라고 의심하던 김대중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세상이 변했고 젊은 정치인들이 선배 정치인들과 대립했다. 송영길, 이인영, 유시민, 원희룡, 정병국, 남경필 등이 30대 혹은 40대 초반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당시의 2030이 그들 세력의 기반이었다. 그들이 정계에 화려하게 데뷔하던 2000년 즈음에 2030의 인구는 5060인구의 두 배가 넘었다.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유력 인사는 물론이고, YS DJ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정치가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내 세대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다.

과거가 반복된다면 이제 다시 30대와 40대 초반의 신진 세력이 5060에게 지분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5060은 20년 전 혹은 30년 전의 권력자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지금의 5060이 2030이었을 때 그들은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집단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2030보다 20%나 많은 인구가 5060에 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앞으로 30년이 흘러 지금 우리 세대가 모두 80세를 넘겼을 때도, 우리 세대는 인구의 거의 20%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2023년 80세 이상 인구는 전인구의 5%도 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전인구의 30%가 넘으면서도 5%도 되지 않는 부모님 세대를 돌보는 걸 힘들어한다. 30년 후에 우리 자녀 세대는 전인구의 20%나 되는 우리 세대를 돌보아야 한다. 그들이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 세대는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에게 빨갱이 트라우마가 없듯이 민주화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우리 자녀 세대는 우리와 또 다르다. 지난달 한국에서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 열렸다. 우리 세대 대부분은 그런 경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가 언론 보도를 접하고 나서야 그 규모와 열기에 놀랐다. 우리는 우리 자녀 세대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그들이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조차 모른다.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

2030이 제대로 직장을 잡고, 경제력을 키우고, 자녀를 낳고, 대한민국을 더 튼튼하게 세워야 5060의 노후가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권력자들은 그들에게 ‘싸가지 없이 대들지 말고 우리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 그들이 왜 분노하는지도 모른다.

2030이 이대로 5060에게 눌려서 시들어 갈까 걱정이다. 그렇다면 우리 노후가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젊을 때 그랬듯이 2030이 5060을 이겨야 미래에 희망이 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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