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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조창원의 기업가정신] 국민정서 심판대 선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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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기업 조직문화 비상
무늬만 혁신이 위기 불러
이해관계자 신뢰 쌓아야


파이낸셜뉴스

조창원 논설위원


한 국가에서 최상위법은 헌법이다. 그런데 헌법 위에 더 높은 법이 있다. 국민정서법이다.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헌법도 당해내지 못한다. 국민정서법을 가벼이 여겼다가 망한 권력이 한둘이 아니다. 기업은 국민정서법 외풍을 더 심하게 탄다.

한국의 대기업을 지칭하는 '재벌'은 틈만 나면 국민들로부터 욕을 듣는다. 소위 '반기업정서'라는 풍토가 강한 편이다. 불법 담합행위부터 지배구조 문제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런데도 재벌을 완전 부정하진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미워도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국민들의 마음이 그렇다. 왜 그럴까. 국내 대기업 창업 1세대가 쌓은 '공덕' 덕분이다.

삼성, 현대차, LG, SK, 한화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그룹 창업 1세대들의 기업가정신에 공통적으로 따라붙는 수식어는 '사업보국'이다. 기업을 일으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을 창업정신 1순위로 둔 것이다. 돈도 벌고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도 되는 일석이조 셈법을 그들은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하는 행동이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국민정서가 생겼다.

물론 창업 1세대가 쌓은 공덕이 평생 유효하진 않다. 감가상각 기한 만료일이 임박했다. 기업을 물려받은 2세, 3세 경영자들의 마음이 조급한 이유다. SK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표방해 이해관계자를 챙기는 것도, 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모빌리티 혁신에 서둘러 승부를 거는 것도 창업 1세대의 후광효과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원리만 있는 게 아니다. 혁신과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망한다는 원리도 있다. 재벌들은 수십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이런 시장의 속성을 비교적 깊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에 대한 국민정서법은 어떤 모습일까. 긍정의 키워드가 우세한 편이다. 기존 공룡 제조업을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이라고 치면, 스타트업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미국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붐 덕분에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한국의 스타트업에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다. 썩은 물에 뛰어들어 혁신을 낳는 메기효과를 고대한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자생력은 떨어진다. '작은 것의 불리함(Liability of smallness)'과 '신생의 불리함(Liability of newness)'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에 생존게임에서 약자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자립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낙오한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모은 나랏돈을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에 쏟아붓는 이유다. 똑 부러지게 혁신을 잘해서 국민들도 그 덕 좀 보자는 마음일 것이다.

카카오가 각종 의혹에 휩싸여 비상이 걸렸다. 비단 카카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스타트업들도 예외일 수 없다. 단순히 사건 한두 개를 법대로 처리할 사안도 아니다. 스타트업 기업가정신과 조직문화 전체가 여론의 심판대에 섰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사실 확인 전까지 의혹은 의혹일 뿐이어서 예단하면 안 된다. 문제는 국민정서법이다. 의혹만으로도 국민정서법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로 즉각 반응한다. 세상에 나 혼자 잘나서 성공한 사람도 기업도 없는 법이다. 스타트업에 쌓였던 긍정의 키워드가 부정의 이미지로 돌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한번 바뀐 국민정서를 되돌리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국민정서법에 딱 마주치면 누구든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카카오를 포함한 스타트업 업계도 마녀사냥이라며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그래도 국민정서법은 에누리 없이 냉혹하다. 쏟아지는 비난에 맞서려면 정공법을 써야 한다. 두 가지 기본적 자기점검을 제안해 본다. 먼저 본인이 하는 사업이 진짜 혁신인지 자문해 보자. 현재 스타트업에 대한 불신은 '무늬만' 혁신이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회사가 여러 이해관계자를 인식하고 있는지 따져보기 바란다. 국민은 곧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국민정서법을 구닥다리 유물로 치부하다간 큰코다친다.

jjack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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