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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화)

[팀장 칼럼] 유전자가위가 ‘마지막 희망’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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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조선비즈 과학팀은 지난 11월 6회에 걸쳐서 유전자 편집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유전자가위 혁명’ 기획 시리즈를 냈다. 유전자가위는 실제 가위가 아니라 원하는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교정하는 효소 단백질 복합체를 말한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중심이던 전 세계 종자 산업의 판을 흔들고 있는 유전자 편집 종자, 얼마 전 영국에서 판매 허가를 받은 세포 신약 치료제 ‘엑사셀’ 같은 유전자가위 분야의 첨단 기술의 현황과 미래를 짚는 시리즈였다. 작게는 수십 조원에서 많게는 1000조원 대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고, 한국도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빠른 규제 정비와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제언도 담았다.

기획이 마무리되고 이메일 하나를 받았다. 이메일을 읽으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가위라는 첨단 기술을 오로지 ‘돈’과 ‘시장’으로만 바라본 게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보낸 이는 세종시에 살고 있는 이주혁씨였다. 이주혁씨는 소아희귀난치안질환환우회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희소 난치성 안질환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유전자 치료와 세포 치료제가 마지막 희망이라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적었다.

이 대표의 첫째 아이는 유전성 망막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대표가 그 사실을 안 건 첫째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70일쯤 지나서다. 여러 검사 끝에 아이에게 ‘kif11′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인을 찾았지만 kif11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선천성 안질환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이 대표는 아이의 안구를 지키기 위해 외과적인 수술로 버티고 있을 뿐이라며 근본적인 치료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선천성 안질환은 여러 복합장애로 이어지는데 이 대표의 아이는 발달지연을 겪고 있다.

이 대표가 찾은 마지막 희망이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치료제는 기존의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에 생기는 돌연변이를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정상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수술이나 약으로 치료가 불가능했던 질환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엑사셀’은 이런 방법으로 그동안 치료가 어려웠던 겸상적혈구증후군 환자들에게 희망이 됐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여길 것도 아니다. 한국은 유전자가위 기술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 이 대표가 희망을 갖게 된 것도 한국에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김정훈 교수를 비롯해 연세대와 KAIST, 울산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의 연구진은 유전자·세포 치료를 위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희망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의 관심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비롯한 환우회는 선천망막질환 유전자·세포치료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선천망막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자들이 깊이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전자·세포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해주는 조직이다. 하지만 치료센터 설립을 위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은 거의 없었다. 매일 서너번씩 열리는 국회의원회관 토론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희소 난치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재능기부하듯 연구에 나섰던 연구자들도 한계에 다다랐다. 김정훈 교수는 “유전자세포치료 각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연구자들이 원팀을 이뤄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연구자 개개인의 선의에 의지해 힘을 모으고 있다”며 “하지만 선의만으로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이제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와 진료를 통합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치료센터가 필요하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R&D 지원과 보건복지부의 진료·임상 지원을 위한 탄력적인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전자세포 치료제가 실제로 환자들에게 쓰이려면 임상을 거쳐야 하는데, 임상을 위한 치료제를 만드는 재료비만 15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연구자 개인이나 희소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의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이제는 연구자들의 선의를 이어받아 정부와 국회가 희소 난치병 환우들을 위해 나서야 할 때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정부가 강조하는 첨단바이오의 핵심 기술이다. 미래에 한국 경제를 이끌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잇는 수출 효자 기술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유전자가위 기술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오늘 대한민국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에 대한 정부의 낡은 규제와 부족한 관심, 지원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종현 과학팀장]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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