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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팬들에겐 다 보였다…‘축구 명가 몰락’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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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8년 만에 K리그2 강등 …수원 삼성, 무엇이 문제였나

경향신문

수원 삼성 팬들이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FC와의 K리그1 2023 파이널B 38라운드 강원FC전에서 비겨 강등이 확정된 뒤 사과하는 수원 선수단을 향해 야유를 퍼붓고 있다. 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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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 앞세워 긴축, 선수 영입 실패
잘 키운 정상빈·오현규 떠나보내고
거액 이적료로 제대로 된 보강 못해

위기 때마다 감독 교체로 임기응변
2020년 시즌 이임생 사퇴 후 6명째
염기훈 “선수들 큰 영향받았을 것”

K리그 전통의 명가 수원 삼성이 끝내 강등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악재들이 결국 올해 한꺼번에 터졌다.

수원은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강원FC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3 파이널B 38라운드 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수원은 같은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와 1-1로 비긴 수원FC와 승점 33점으로 타이를 이뤘으나 다득점에서 밀려 최하위를 확정, 다음 시즌 K리그2(2부리그) 강등이 확정됐다.

수원의 강등은 K리그가 출범한 1983년 이래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원은 K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명문 구단 중 하나였다. 1995년 창단해 1996년부터 K리그 무대에 뒤늦게 나섰지만, 리그에서 4번, 대한축구협회(FA)컵에서 5번,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2번 등 많은 우승을 거머쥐며 빠른 시간 안에 ‘전통의 명가’로 우뚝 섰다.

‘삼성’의 이름 아래 1등주의를 표방하며 최고의 감독과 선수들을 불러모아 이뤄낸 결과였다.

그런 수원도 2014년을 시작으로 조금씩 쇄락하기 시작했다. 2014년은 삼성스포츠단의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넘어간 해다. 효율과 마케팅을 강조하며 긴축재정에 들어간 결과 자금력이 현저하게 부족해졌고, 이는 결국 좋은 선수를 영입하지 못해 성적이 하락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수원의 몰락이 오직 돈과 관련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부호가 붙는다. 수원은 승강제가 처음 도입된 2013년 총연봉이 90억6742만원(외국인 선수 제외)으로 전체 1위였다. 2014년에는 더 늘어난 98억6400만원으로 전북 현대(118억원)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이후 제일기획의 본격적인 예산 삭감으로 조금씩 규모가 줄어들어 70억~80억원대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포항 스틸러스처럼 수원보다 더 적은 돈을 쓰고도 좋은 성적을 내는 기업 구단도 있고, 일부 시도민구단들의 상황은 수원보다 더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강등은 단순히 예산이 줄어든 것만의 문제라고만은 볼 수 없다.

이보다는 구단 프런트의 아쉬운 운영에 더 큰 무게가 실린다. 예산이 줄기 시작한 후부터 수원은 육성에 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정상빈(미네소타), 오현규(셀틱), 강현묵(김천) 등 재능있는 유스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결과도 얻었다.

하지만 구단은 확실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며 팀 성적을 극대화하지 못했고, 결국 정상빈과 오현규가 해외로 떠나면서 다시 제자리걸음을 했다. 선수를 이적시키면서 받은 거액의 이적료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 이번 시즌이 그 정점이었다. 수원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오현규를 셀틱으로 이적시키면서 약 300만유로(약 42억원·추정치)의 이적료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이적료로 제대로 된 보강을 하지 못했다. 203㎝의 장신 공격수 뮬리치를 영입했으나 4골·1도움에 그쳐 사실상 실패한 영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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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이 어려운 상황에서 팀 전체가 하나로 뭉치지도 못했다. 프런트는 위기의 책임을 오로지 감독을 교체하는 것으로만 해결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수원은 2020년 시즌 도중 이임생 감독이 사퇴한 뒤 박건하 감독과 주승진 감독대행, 이병근 감독, 최성용 감독대행, 김병수 감독을 거쳐 이번 시즌 막판에는 팀의 레전드인 염기훈(사진)을 감독대행에 앉혀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수시로 바뀌는 사령탑에 선수들도 혼란스러워했다. 염 대행이 강원전이 끝난 후 “선수들한테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 역시 명가 수원을 목놓아 응원하는 팬들 앞에 매 경기 투혼을 발휘했는지 돌아볼 대목도 없지 않다.

예산이 줄어든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 수원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눈앞에 닥친 위기만 그저 넘어보겠다는 안일함이 강등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2부리그에서 환골탈태로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한다면, 수원의 겨울은 생각보다 더 길고 혹독할 수 있다.

경향신문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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