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과사' 입증 까다로워…이태원 참사 재판 실형 쉽지 않다"
"해경 지휘부와 달리 이태원 참사 책임자 6명 구속돼" 반론도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보석 석방된 박희영 용산구청장. 2023.11.6/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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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성희 기자 = 해밀톤호텔 대표이사 이모씨(76)는 지난달 29일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참사 관련 법원의 첫 판단이었다.
'사고 예측 가능성'을 따지기 어려워 통상 건축법 위반으로 실형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 법조인 다수의 의견이다. 이씨는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불법 철제 가벽(담장)을 세우고 도로를 허가 없이 점용한 혐의(건축법 및 도로법 위반)를 받았다.
◇박희영·이임재 재판 쟁점 '사고 예측' '주의 의무'
'사고 예측 가능성'은 이태원 참사 관련 향후 재판에서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주요 피고인의 혐의가 '업무상과실치사상'이기 때문이다.
이 혐의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사고 예견'(사고 예측)과 '주의 의무'다. 요컨대 '사고(참사) 가능성을 예측하고도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에 따라 남은 이태원 참사 관련자들의 처벌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무상과실치사상은 가중 처벌되는 죄다. 형법 제268조는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해당 혐의에서 '업무'는 판례상 직업 또는 직책과 관련된 직무인 경우가 많다. 경찰관·소방관·대중교통 운전사·의사·교도관·공사 현장 관리자·찜질방 주인·호텔 사장 등의 업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빗대자면 경찰관이나 소방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통상적인 주의 의무 등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구조에 나섰다가 실패한 피고인들이 받은 혐의도 업무상과실치사상이었다. 그중 참사 현장에 출동해 눈에 보이는 사람만 구조하도록 지시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를 받는 김경일 전 목포경찰서 123정장은 2015년 실형(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참사의 예견가능성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9주기인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에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2023.4.1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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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당시 해경 지휘부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았으나 혐의를 벗었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최상환 전 해경차장,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 등 해경 지휘부 10명은 지난달 2일 대법원에서 원심과 같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세월호 참사 발생 9년 만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이다.
'최선의 방법으로 참사 현장을 지휘하지 못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돼도 업무상 주의를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1·2심의 판단이었다.
김 전 해경청장 등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이 배에서 탈출하도록 지휘하는 등 구조에 필요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303명을 숨지게 하고 142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세월호 구조 실패로 법적인 책임을 지는 해경은 당시 현장지휘관 1명뿐이다. 업무상과실치사상은 그만큼 입증이 까다로운 혐의이다.
◇"입증 어려워" vs "실형 가능성"
법조계에서는 '이태원 참사로 기소된 이들을 처벌해야 마땅한 것 같지만, 업무상과실치사상 특성상 법리 다툼이 치열하고 법적 책임을 부과하기 만만치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구청장과 이 전 서장을 비롯한 이태원 참사 피고인들이 모두 실형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받는 피고인들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4명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 정보외사부장 등 경찰 정보라인 관련자 3명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 등이다.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 있는 해경 지휘부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며 "판사들은 선례를 따라가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 재판에서) 새로운 법리가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면 도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누군가 책임져야 했으나 그런 사람이 없어 참담한 기분"이라면서도 "단순 법리로만 따지면 피고인 중 상당수가 실형을 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검찰 세월호 특수단의 수사 당시 해경 지휘부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구속을 면한 것과 달리 박희영 구청장과 이 전 서장 등 이태원 참사 피고인 6명은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구속돼 실형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태원 참사 주요 피고인들의 혐의가 더 뚜렷하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법조인들은 참사 당시 이태원역에 발송된 공문과 경찰 내부 보고서를 근거로 실형을 전망했다.
참사 전 용산구청은 이태원역 방문자들이 크게 증가할 수 있으니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이태원역에 보냈고, 서울 용산경찰서는 참사 당일 핼러윈 인파 위험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관련자들이 참사를 충분히 예견하고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정황이나 증거라는 의미다.
이창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인파가 몰릴 수 있으니 시민 안전 계획을 세우라며 (참사가 발생한 달인) 10월에만 두 차례 화상 회의를 했다"며 "무전으로 압사 위험 신고가 이어졌으면 현장을 확인하고 종결 처리를 해야 했지만 경찰은 그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2023.9.11/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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