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모든 역량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 달라" 최후 진술
"삼성 글로벌 초일류기업 도약 책무…모든걸 쏟아붓겠다"
결심 공판 출석하는 이재용 회장 |
삼성은 이날 검찰 구형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예상보다 검찰 구형이 세다"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우리나라 최고 기업집단인 삼성이 이런 행태를 범해 참담하다"며 중형을 구형하자, 이 같은 검찰의 입장이 재판부의 1심 선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다만 삼성은 그간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해 온 만큼 선고 시 집행유예로 낮춰지거나 무죄가 나올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회장 측은 그간 양사의 합병이 사업적 필요에 따라 양사 경영진과 당시 미래전략실의 판단으로 진행된 데다, 이 회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회장은 이날 최후진술에서도 "이 사건 합병과 관련해 저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며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 분들께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 수사 기록이 워낙 방대한 만큼 1심 결과는 일러야 내년 초에나 나올 전망이다.
검찰과 삼성의 항소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최소한 내년까지는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 수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 법정으로 |
이 회장은 이미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 8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 회장은 이번 부당합병 사건으로 2021년 4월부터 이날까지 총 106회 열린 공판에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면담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총 96번 출석했다.
이날도 재판에 출석하느라 조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6주기 추도식에는 불참했다.
이 회장은 앞서 검찰·특검 소환조사만 국정농단 사건(8회)과 삼성물산 합병 사건(2회)으로 총 10회 받았다.
2017년 2월 구속 기소된 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354일)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된 뒤 가석방될 때까지(211일)를 더하면 구속 일수만 565일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첨단 기술 경쟁 등 경영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 같은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력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 1∼3분기에만 12조6천900억원의 적자를 낸 상태다. 최근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급부상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선점도 SK하이닉스에 밀렸다.
이 회장은 이날 "글로벌 공급망이 광범위하게 재편되고 있고 생성형 AI 기술이 반도체는 물론 전 세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등 상상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 벌어지는 이런 일은 사전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매주 재판 준비와 출석 등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글로벌 IT 기업들을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작년 10월 회장에 오를 때만 해도 재계 안팎에서는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갈 만한 '뉴삼성' 메시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삼성의 대대적인 변화나 체질 개선 등을 이끌어낼 이 회장의 메시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작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두드러진 성과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회장은 "제게는 기업가로서 지속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기본적 책무가 있다"며 "이병철 회장이 창업하고 이건희 회장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런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며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재판 결과에 따라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여부,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시점 등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은 삼성에 있어 '잃어버린 몇 년'"이라며 "이참에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야 삼성답게 혁신적인 경영을 하고 미래 준비 모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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