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숭의학원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숭의여자대학교 내 마펫기념 숭의음악당에서 창립 120주년 기념식을 진행한다.
1903년 숭의여학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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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평양에서 개교한 숭의여학교는 ‘하나님의 의(義)를 높인다’는 건학 정신 아래 여성교육의 불모지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낸 관서 지방 최고의 명문학교였다.
숭의여학교는 학교 이름대로 의를 실천한 사람들이 넘쳤다.
1913년 숭의의 기숙사에서 은밀히 조직된 송죽결사대원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에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이들은 3.1 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군자금 모집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무임소장관을 지낸 박현숙,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인 권기옥 등은 숭의가 배출한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또한 최초의 여류 성악가 윤심덕, 최초의 여성 문교부장관 김옥길, 소설가 강경애 등과 같은 선각자들도 길러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숭의는 건학정신에 따라끝까지 이를 거부하다가 1938년 3월에 자진 폐교하는 순절의 길을 택하면서 평양 시대의 숭의는 막을 내렸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와중에서도 평양 숭의 동문들은 숭의의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숭의학원은 1953년 6월 박현숙 여사의 주도로 서울 충무로에 있었던 송죽원이란 임시교사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서울 남산 경성신사 터로 이주해 신사 건물을 철거하고 건물을 새롭게 짓고 입주했다.
1966년 숭의국민학교, 1971년 숭의여자전문학교, 1974년 전문학교 부설유치원의 교육기관이 신설되면서 남산의 숭의학원은 규모를 넓혀나갔다.
남산 숭의학원은 평양의 전통을 이어받아 기독교를 모든 교육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배구의 조혜정, 빙상의 김영희, 농구의 박찬숙과 같은 선수를 배출한 스포츠 명가로 이름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월드비전의 한비야 등 동문들의 사회적 활동도 활발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체제를 갖춘 숭의학원은 학급을 증설하고 체육관, 도서관, 음악당 등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이 과정에서 교육공간이 과밀화됐고 교육의 효율성이라는 문제가 야기됐다.
1999년 숭의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백성학 전 이사장은 남산 외교구락부를 매입해 대학교 강의실을 확충했다.
2023년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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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학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2003년에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부지를 마련해 숭의여자중∙고등학교를 신축 이전했다.
중∙고등학교가 빠져나간 현재 숭의 남산캠퍼스에는 숭의여자대학교(부속유치원 포함)와 숭의초등학교 학생들이 꿈과 끼와 재능을 키워가고 있다.
학교법인은 1999년 이래 안정된 재정여건 속에서 평양 숭의여학교의 건학정신을 굳건히 하며 숭의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더불어 학령 인구 급감과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속에서 숭의학원은 쇄신과 혁신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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