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을 마치고 묘소 참배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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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났다. 1980년부터 열린 추도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도, 윤 대통령이 취임 후 박 전 대통령과 따로 만난 것도 모두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중동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2시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달려가는 성의를 보였다. 내년 총선에 앞서 야당과 협치를 통해 중도층 민심을 잡고 최근 이탈조짐이 뚜렷한 보수층 표심도 껴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 '보수 대통합'을 먼저 선택한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은 우리 국민에게 자신감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며 “지금 세계적인 복합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의 정신과 위업을 다시 새기고 이를 발판으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산업화의 위업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결단과 용기를 배워야 한다”면서 “자랑스러운 지도자를 추모하는 이 뜻깊은 자리에서 영애이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가족분들께 자녀로서 그동안 겪으신 슬픔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박 전 대통령 서거 제44주기 추도식 후 묘소 참배를 마치고 함께 걸으며 대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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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꿈이자 저의 꿈, 오늘 이곳을 찾아주신 여러분들의 꿈은 모두 같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힘을 모아 우리와 미래세대가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오늘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추도식에 참석해준 윤 대통령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현충원에 도착해 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며 5초가량 인사를 주고받았다. 추도식 이후에는 배석자 없이 둘만 묘소로 걸어 올라가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오솔길로 내려오며 대화를 나눴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4월 12일 대구 달성군 자택으로 찾아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이후 공식자리인 5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조우했지만, 전·현직 대통령으로서 두 사람이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자택 방문 후 "아무래도 지나간 과거가 있지 않나"라며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속으로 가진 미안함, 이런 것을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수사팀장으로 참여한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졌고,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때는 윤 대통령이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가 좌천당한 악연이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현충원을 찾았다. 보수 통합 메시지가 시급하다는 행보로 읽히는 대목이다. '총선 전초전'으로 불렸던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데다 '보수의 심장'으로 통하는 TK(대구·경북) 민심까지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당초 둘의 만남을 추석 전후로 추진하려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 이유 등으로 미뤄졌다고 한다. 하지만 민심 악화와 보수 이탈 조짐이 심상치 않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TK 지지율은 전주보다 13%포인트 하락한 45%에 그쳤다. 윤 대통령이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이후 중도층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변화와 민생을 강조했지만, 여당 내부에서는 보수의 기반인 TK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자 훨씬 큰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서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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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권 관계자는 “보수가 총결집해야 하는 게 내년 총선인데, TK 지지율이 흔들리면 수백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도권 선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황교안 전 총리와 김관용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오세훈 서울시장은 물론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인요한 혁신위원장 등이 총출동했다. 대통령실도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주요 참모진이 동행했다.
반면 지지층 결집에만 주력해 야당을 외면한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윤 대통령 취임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전날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 회동 제안에 대해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야당 대표의 사법 이슈는 이제 사법의 일로 맡기고, 싸우더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면서 싸우는 정치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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