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공개된 통일신라시대 수구다라니 2점. 각각 한자(위쪽)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배접된 상태였다가 이번에 분리·복원됐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
통일신라 시대의 부적, ‘수구다라니’가 24일 공개됐다. 그동안 고려·조선 시대의 다라니가 공개된 적은 있지만, 그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다라니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명희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에 공개하는 다라니는 국내에 존재하는 다라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다라니는 세계적으로도 20여 점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조선총독부가 유물을 입수했을 당시에는 이 다라니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립 후 수장고에 보관됐다가 2020년 한 학술대회에서 그 존재가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보존 처리와 복원이 이뤄졌다.
이날 공개된 다라니는 두 점이다. 12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상당 부분 소실됐지만 남겨진 그림과 글자는 비교적 선명했다. 가장자리에는 연꽃과 화병, 검, 칼, 금강저(金剛杵·불교 의식에서 쓰는 용구), 소라 나팔 등을 그려 넣고 그 안쪽에 부처의 말씀을 빼곡히 적어넣었다. 두 점의 다라니에는 각각 2000여 개의 글자가 쓰여있다. 다라니는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것과 한자로 쓰인 다라니가 여러 번 접힌 채 포개져 붙어있는 형태로 발견됐다. 경주박물관은 2020년부터 3년에 걸쳐 배접된 다라니 두 점을 분리해 복원했다. 두 점의 다라니는 모두 가로·세로가 약 30㎝ 크기의 정사각형 형태다. 신 연구사는 “다라니를 쓴 종이가 닥나무로 만든 한지로 분석돼 우리나라에서 쓴 다라니로 입증됐다”며 “국내에서 발견된 판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한 필사본”이라고 말했다.
종이 다라니가 이토록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금동함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다라니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풍습이 유행하며 점차 다라니를 함에 담아 탑·불상·무덤에 넣어두는 등 다양한 보관법이 파생됐다는 것이 경주박물관의 설명이다. 다라니가 담겨있던 금동 경합은 식물 장식인 보상화 무늬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의 모습이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때 제작된 기존 금동 합, 사리 용기 등과 제작 방식이나 기법이 유사하다.
다라니 두 점과 경합을 볼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은 24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열린다. 아이를 바라는 다라니, 진리를 구하는 다라니, 비가 오거나 그치기를 바라는 다라니,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다라니, 이렇게 4개의 다라니를 QR코드를 통해 휴대전화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멀티미디어 코너도 마련됐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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