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대한 혐오 표현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요. 요즘엔 ‘맘충(Mom+蟲)’이란 조어가 온라인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도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엔 ‘빠충’이란 단어까지 생겨났죠.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웹툰 작가 주호민 부부의 교권침해 논란 등으로 부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더 냉랭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지난해 550여 개나 생긴 것을 보면 씁쓸한 마음마저 듭니다. 물론 일부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한국에선 왜 유독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부모가 많은지 궁금해졌습니다. 기자는 육아를 하고 있는 덴마크, 미국, 일본의 30대 부모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노키즈존의 존재에 대해선 모두가 놀라워했습니다. 한국처럼 일부 부모의 육아 방식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기자가 만난 이들은 이 세 사람입니다.
▽서유민 / 39세 / 덴마크 : 6세, 3세 아이 양육 중
덴마크 코펜하겐에 거주하는 서유민(39) 씨 가족. 6세 리나, 3세 로아를 양육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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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김 / 35세 / 미국 : 30개월 아이 양육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제니퍼 김(35) 씨. 30개월 메이들린을 양육 중이며 11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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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아야코 / 34세 / 일본 : 28개월 아이 양육 중(사진은 비공개)
노키즈존, 큰 문화충격…아이들은 어디서나 환영 받는 존재
▽기자
한국에선 일부 극성 부모 때문에 종종 논란이 되곤 합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서도 이런 사회적인 이슈가 있나요?
▽아야코(일본)
일본에도 종종 그런 논란이 생기곤 합니다. 제가 기억나는 사례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데 자녀가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동안 진도를 너무 나가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부모가 있었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니퍼(미국)
어디든지 그런 극성 부모는 있을 수 있죠. 내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게 부모 마음이니까요. 미국에도 분명 그런 부모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한국만큼 논란이 된 사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요.
▽유민(덴마크)
덴마크에서도 공공장소에서 뛰거나 큰 소리를 내는 아이를 만날 수 있지만 그걸 가만히 두는 부모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더 크게 소리 지르고 화내는 부모 역시 본 적 없어요. 조용히 다가가서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서 조곤조곤 설명해준 후에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장소로 데려가죠. 최근 한국에서 일부 교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덴마크는 ‘갑과 을’ 관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교사들도 집에서 평범한 부모이고, 상호 존중과 신뢰가 덴마크 사회의 가장 기본 가치이기 때문에 부모가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기자
한국에선 노키즈존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도 노키즈존이 있나요?
▽유민(덴마크)
3월 덴마크 국영방송 TV2 통역사로 한국에 출장을 갔었어요. 당시 출연진이었던 덴마크 가족과 예쁜 카페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노키즈존이라며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저와 덴마크 가족 모두 너무나 큰 문화 충격을 받았죠. 덴마크에서 아이들은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존재예요. 버스나 기차에서도 아이들이 울거나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며 쳐다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장시간 앉아 있는 게 힘든 아이들이 조금 덜 힘들 수 있도록 말을 걸어주고 장난을 쳐주며 같이 놀아주기도 하죠. 한국에 노키즈존이 증가하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제니퍼(미국)
미국에는 노키즈존은 없지만 ‘성인존(Adults Only)’은 있어요. 하지만 이곳은 성인들만 출입이 가능한 술집이나 유흥업소 등이 대부분이죠. 극성 부모들 때문에 일반 음식점이나 카페에 노키즈존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아직 미국에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야코(일본)
아직까지 일본에서 노키즈존은 본 적이 없어요.
육아는 아이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 깨닫는 과정
▽기자
자녀를 훈육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또 체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제니퍼(미국)
아이가 위험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주는 편입니다. 체벌도 아이에겐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다만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깨달을 수 있도록 왜 잘못된 건지, 왜 하면 안 되는지 이유를 계속 설명해주죠. 육아는 아이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 과정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에 맞춰 배우고 자신만의 개성과 특성을 찾으며 성장하죠. 부모라고 아이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전 제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아야코(일본)
(어떤 행동이) 왜 안 되는지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려 하죠. 아이가 울고 있다면 일단 진정시킨 뒤 훈육을 합니다. 체벌은 하지 않아요. 꼭 때리지 않더라도 감정적으로도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있는데 그건 진정한 훈육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아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육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가 낮잠 자는 동안엔 저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쉬면서 제 자신을 돌봐야 해요. 엄마가 웃으면 아이도 웃고 그래야 행복해지니까요.
▽유민(덴마크)
우리 가정에선 무서운 표정과 큰 소리로 훈육하지 않고 부드럽고 따뜻한 대화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잘 하려고 노력했으나 잘 안 된 것으로 여겨주고, 좋은 의도로 했을 것이라 믿어주는 것이 대화의 첫 시작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묻고 아빠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길 원하는지 물어봅니다. 만약 아이들 능력 밖의 과제라면 부모가 알려주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배울 수 있게 해주죠. 결정권이 아닌 선택권을 주며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해낼 수 있게 해 성취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믿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은 발전에도 크게 격려하며 그 노력에 대해 칭찬해줍니다. 쉽지 않은 건데 잘하려고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해줍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격려하며 기다려줍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체벌이 아니라 믿어주는 부모의 격려와 위로라고 믿습니다.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에선 아이 옷으로 가정형편 판단 안 해…출산선물도 중고용품으로
▽기자
한국의 일반적인 부모는 자식을 평생 책임져야 하는 지원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자식이 성인이 된 후에도 학업, 결혼, 주택 마련 등 각 단계마다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집니다. 당신에게 자녀란 어떤 의미입니까.
▽아야코(일본)
학업을 마칠 때까지는 부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엔 본인이 스스로 독립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기 때문에 아쉽더라도 부모로부터의 분리는 필요하죠.
▽유민(덴마크)
덴마크에서는 대부분 부모와 조부모가 아이들 이름으로 매달 적금을 부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선물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대학교 학비가 지원되기 때문에 부모 도움 없이 공부할 수 있어서 보통 18~21세에 독립을 하죠. 물론 그 이후에 부모가 필요하다면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 있겠지만 부모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아이는 내 꿈을 대신 이뤄줄 대리만족의 대상도 아니고 내 분신도 아니에요. 나와 닮아있다는 것이 놀랍지만 나와는 또 다른 존재죠.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평생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봅니다.
▽제니퍼(미국)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부모님과 같이 살고 졸업 후에는 보통 독립해서 대학교를 가거나 취직을 합니다. 미국 부모들은 자녀를 고등학생까지 키워놓으면 그 이후에는 부담이 덜한 편이죠.
▽기자
여러분들의 나라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야코(일본)
일본은 아직도 ‘여성 육아’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육아에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여전히 희박해요. 정부의 지원도 일시금 지급 등 임시방편적인 부분이 많아서 장기적으로 육아에 도움을 주는 정책은 부족한 것 같아요.
▽제니퍼(미국)
미국은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교육적인 측면에서 모든 아이가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유민(덴마크)
덴마크는 아이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존중받으며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주 37시간 근무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후 2~3시에 집에 오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만들고 대화하며 식사를 할 수 있죠. 1년 중 유급휴가 기간도 많아서 가족이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도 많아요. 덴마크는 빈부격차가 크지 않고 직업에도 귀천이 없어진 지 오래예요. 아이들의 옷이나 물건으로 부모의 경제적인 수준을 평가한다는 생각 자체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 용품을 사고파는 중고 시장이 굉장히 발달해 있어요. 출산 선물로 중고 용품을 선물하는 경우도 흔하죠. 아이들이 금방 크고 뛰어노느라 금세 헌 옷이 되니까 아이들 물품에 큰 지출을 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무엇보다 경쟁을 강조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목표를 두고 교육을 하는 게 좋아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것, 겉치레나 허례허식, 특권의식, 우월감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여서 아이들 키우기에 참 좋습니다.
덴마크는 아이에 대한 정부 지원도 많습니다. 연령에 따라 육아 지원금이 3달에 한 번 70~90만 원씩 차등 지급되고 사립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는 만 6세(0학년)부터 대학원까지 전액 학비 지원을 받습니다. 의료비 역시 무료이며 치과는 현재 19세까지만 무료지만 2025년에 21세까지 무료 연령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만 덴마크에서 육아의 어려움이라면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부터 자기가 스스로 다 결정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거예요. 어린이집에 다니는 세 살짜리 아이가 ‘여기서 결정하는 건 바로 나야’라고 종종 말하곤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놓고 부모와 함께 의논하기 보다는 일단 결정해 버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버리는 경향도 있어요. 그래서 전 “네가 18세가 되면 그 때부터 결정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죠.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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