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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동일노동·차별임금, 불법파견, 대량해고… 다름 아닌 '정부 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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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학폭신고센터 상담사들 '눈물']
여가부 돌연 예산 삭감으로 실직 위기 내몰려
업무 같지만 타부처 소속보다 월급 100만원 적어
사실상 파견직인데 직고용 없이 단기계약 반복
한국일보

학교폭력 신고 상담전화가 117로 통합된 2012년 1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 전신) 장관과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이 서울 용산구 갈월동 경찰지원센터 내에 있는 117학교폭력신고센터를 방문한 후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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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만 원과 290만 원. 같은 상담센터에서 4조 2교대로 같은 업무를 하는, 근속 연수도 11년 차로 같은 두 파견 상담사의 월급 차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 적은 임금을 받는 쪽의 상담사들이 파견기관의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 결정으로 내년부터 실직할 위기에 처했다. 파견 기간이 2년을 넘으면 원청이 직접 고용하게끔 법에 정해져 있지만, 근로자 파견 계약이 정식으로 맺어진 적도 없다.

어떤 민간 콜센터의 부조리한 고용 행태인가 하겠지만, 엄연히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정부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2011년 동급생들의 집단적 폭력에서 비롯한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경찰청·교육부·여성가족부가 합동으로 운영해온 '117학교폭력신고센터(117센터)' 얘기다.

똑같은 '주야비휴' 근무인데 월급 100만원 차이


여가부는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서 상담사 인건비를 포함해 117센터 사업 예산 23억200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센터 상담업무도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뜻밖의 결정이다. 이로 인해 전국 117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 179명 가운데 여가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34명(지난해 기준)은 관련 부처들이 고용승계 조치를 해주지 않으면 내년부터 직장을 잃을 공산이 커졌다.

여가부 파견 상담사들이 졸지에 고용 불안에 처하면서 이들이 그간 겪어온 임금 차별도 재차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17센터 상담사는 연차가 같더라도 여가부 파견 직원이면 교육부 파견 직원보다 월급이 100만 원 가까이 적다.

교육부 파견 상담사는 시도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직(무기계약직) 신분으로, 매달 공통 급여인 기본급과 급식비 외에 △복무 경력에 따른 근속수당 40만 원 △가족수당(배우자·자녀) 20만 원 △야간근로·연장근로·휴일근로·휴일연장 등 부정기 근로수당 40만 원을 받는다. 24시간 운영되는 117센터 특성상 상담사 모두가 '주야비휴'(주·야간 12시간씩 근무 후 이틀 휴무)로 근무를 서는데도, 근속수당·가족수당은 물론이고 휴일과 야간에 일한 대가까지도 불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한국일보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운영 사업 종료를 종사자에게 통보해달라며 여가부가 지난 9월 각 지자체에 보낸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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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별대우는 센터가 출범한 2012년부터 계속되고 있고, 국회가 한 차례 개선을 요구했지만 임금 차이는 되레 더 벌어졌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김수민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117센터 상담사 임금이 연간 최대 600만 원(월 50만 원)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은 격차가 2배가량 커진 셈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교육청 예산으로 상담사 급여를 따로 편성하지만, 여가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차이가 있다"며 "예산 확보 노력은 했지만 인건비를 계속 올리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여가부 파견 상담사들은 "차별을 인내한 결과가 무더기 해고냐"라며 분노하고 있다. 117센터가 출범할 때부터 일해온 A씨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우리가 지금은 여가부의 피해자가 돼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임금 차별만 해도 여가부, 센터, 지자체에 10년 넘게 얘기했지만 모두 자기네와 상관이 없다고만 했다"며 "왜 우리들을 '어둠의 자식'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국일보

그래픽=신동준 기자


1년 단위 근로계약 갱신... 불법 파견 소지도


117센터 상담사는 정규직, 무기계약직, 기간제근로자로 고용 형태도 각기 다르다. 경찰청 관할 55명은 경찰관(정규직)이고, 교육부 관할 90명은 대부분이 교육청에 무기계약직으로 고용돼 있다. 여가부 관할 34명은 계약직이되 고용 관계가 한층 복잡하다. 지자체가 운영하고 여가부 산하기관(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지도·관리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상담사를 고용해 117센터로 파견하면 여가부가 인건비를 지급하는 형태다.

기간제법은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2년을 초과해 쓸 수 없고 기한을 넘기면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도록 원칙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여가부 파견 상담사 가운데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직원이 각각 몇 명인지는 공식 집계가 없다. 여가부는 최근에야 현황 파악에 나섰고, 상담사 본인조차 자기 신분을 착각하고 있는 형편이다. 11년간 상담사로 일한 B씨도 "2년 넘게 근무하면 신분 전환이 된다니까 다들 무기계약직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지만, 현재 근로계약서상 계약기간은 올해 1년으로 명시돼 있다. 무기계약직 전환 없이 기간제 근로계약을 계속 갱신해온 것이다.

여가부는 상담사가 2년 넘게 일했다고 반드시 무기계약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라면 2년을 초과해서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기간제법상 예외 조항이 근거다. 여가부는 또 사업이 종료되면 무기계약직이더라도 반드시 고용이 계속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그래픽=신동준 기자


117센터 운영 방식을 두고 파견법 위반 시비도 일고 있다. 센터는 경찰청이 여가부와 교육부에서 보낸 상담사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른 기관에서 온 근로자가 원청에서 직접 업무 지휘를 받는 것은 '도급'과 구분되는 '파견'의 핵심 요건이라, 117센터 상담사는 파견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대체적 평가다. 해당 사업을 평가한 국책연구원(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경찰청이 파견 상담사에게 업무를 지시하려면 상담사 고용기관(여가부 파견자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과 파견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여가부·교육부·경찰청은 '파견이나 도급계약에 따라 인력 파견이 이뤄졌나'를 묻는 한국일보 질의에 "파견·도급이 아니라 세 부처 간 업무협약에 의해 사업이 진행돼 왔다"고 답했다.

유성규 노무법인 참터 노무사는 "업무를 도급으로 준 거라면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해서는 안 되고, 파견이라면 업무 지시는 가능하되 파견법을 준수해야 한다"며 "(117센터 인력 운용은) 불법 파견 판결을 받은 현대차 위장도급과 유사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파견 사업을 하려는 사용자는 고용노동부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근로자 파견 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지 않았다면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파견 근로자 사용 기간은 2년을 초과해서는 안 되며, 기한을 넘길 경우 원청이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학폭 상담 건수는 증가하는데

한국일보

2019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여가부가 117센터 상담사에 대한 차별 대우에 대해 내놓은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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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센터에 접수되는 학교폭력 신고는 증가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2만8,241건이었던 신고 건수는 2022년 4만3,010건으로 2년 만에 52% 급증했다. 코로나19로 닫혔던 학교가 정상화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센터 운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가부가 이탈하면 당국의 학교폭력 대응 역량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가부는 관련 예산을 삭감한 이유로, 조세재정연구원이 사업 연장 평가에서 "사업 추진에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점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 평가 내용을 보면 여가부가 117센터 사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경찰청에 인력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걸 문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학교폭력예방법은 국가가 학교폭력 긴급전화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여가부 사업은 경찰청이 설치한 긴급전화에 상담사를 보내는 '인력파견사업'이라 법적 타당성이 충분치 않다는 게 연구원 지적이다.

여가부가 사업 연장 평가에서 '법적 근거 미흡' 지적을 받을 때마다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도 아니었다. 일례로 여가부는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예방 및 지원 사업에 대해 "지원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관련 예산은 지난해 4억1,000만 원에서 올해 3억5,200만 원으로 일부만 삭감했다.

여가부는 상담사 고용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가부, 경찰청, 교육부는 뾰족한 협의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경찰청과 교육부는 여가부 파견 상담사의 직접 고용은 어렵고, 여가부가 예산을 확보해 117사업이 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가부는 지자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도 상담사들을 다른 사업 인력으로 전환해 고용관계를 계속 유지해줄 것을 안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담사들의 불안은 크다. B씨는 "여가부의 요청은 권고 수준이라 우리가 과연 (고용승계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우리가 빠지면 경찰청이나 교육청에서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 될 테니, 우리가 센터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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