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어 슬로베니아도 '국경 통제' 대열에 합류…국경 검문 도입
테러 공포에 검문검색 강화한 이탈리아 군경 |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유럽 국가들이 불안정한 중동 정세와 프랑스·벨기에 테러 사건을 이유로 속속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다.
슬로베니아가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이웃 국가인 헝가리,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에서 검문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AP 통신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슬로베니아 STA 통신은 국경 검문이 오는 21일 도입돼 두 달 동안 유지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전날 이탈리아가 오는 21일부터 열흘간 슬로베니아와의 국경 통제를 재개한다고 밝힌 데 이어 슬로베니아도 국경을 맞댄 국가를 상대로 동일한 조처를 한 것이다.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는 유럽 내 가입 27개국 간 국경의 자유로운 인적·물적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 가입국이다.
솅겐 조약 가입국들은 "공공 정책이나 내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 일시적으로 국경을 통제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과 프랑스·벨기에 테러 사건으로 테러 공포가 커지자 국경 강화가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모양새다.
보스티얀 포클루카르 슬로베니아 내무부 장관은 "유럽의 테러 위험이 커졌다"며 "우리는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위험은 주로 중동과 아시아 출신 불법 이민자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급진적인 사람이나 테러 의도를 가진 사람이 서부 발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부 발칸 루트는 중동 난민들이 발칸 반도를 경유해 헝가리, 크로아티아로 들어온 뒤 유럽 각국으로 흩어지는 루트를 가리킨다.
이들은 일단 솅겐 조약에 가입한 국가에 들어오면 여권 없이도 다른 가입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점을 노리고 어떻게든 헝가리, 크로아티아 땅을 밟으려고 한다.
이에 슬로베니아가 자유 통행의 보호막을 악용한 테러 분자들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헝가리, 크로아티아와의 국경 통제에 나선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슬로베니아와의 국경 통제에 나선 이유로 테러 위협을 들었다.
정부는 전날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후 역내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 중단이 불가피하다"면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일단 열흘간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을 통제한 뒤 연장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올해 슬로베니아 국경을 통해 이탈리아로 불법 입국한 이민자들은 1만6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에 따른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보복이 시작된 이후 유럽 내에서는 테러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3일 프랑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체첸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 20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교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이슬람 국가(IS) 출신임을 주장하는 40대 튀니지 남성의 총격으로 2명이 사망하면서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상태다.
이 튀니지 남성은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 등 유럽을 활보하면서 총격 사건을 준비하고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경 통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우리의 국경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솅겐 조약은 국가 간 경계를 허물어 '하나가 된 유럽'을 만들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테러 위협 고조 속에 유럽 국가들이 하나둘 조약의 예외 조항을 활용해 국경을 걸어잠그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유럽 통합의 이상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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