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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껴야 '진정한' 데이트폭력 피해자?…"통념으로 판단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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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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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폭력 피해자가 흐느끼거나 불안에 떠는 등 사회 통념상 '피해자다움'을 보일 때 사람들이 사건을 더 심각하게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결국 피해자에게 특정 행동과 반응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게 돼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오늘(11일) 학계에 따르면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석사과정 임하연 씨와 박지선 교수는 '한국심리학회지:문화 및 사회문제' 최근호에 실은 논문 '데이트 폭력 사건 판단에서 피해자다움의 영향'에 이런 내용을 담았습니다.

'피해자다움'이란 범죄가 발생한 사회에서 피해자에게 기대되는 전형적 태도나 행동, 사고 등을 의미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범죄를 당한 뒤 웃으면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피해자다움'을 기대하는 대표적 예입니다.

그러나 범죄 피해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피해 직후엔 특히 충격 속에 오히려 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려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연구팀은 이성 교제 경험이 있는 만 20∼39세 미혼 성인 남녀 160명에게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반응이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한 뒤 사건의 심각성을 7점 리커트 척도로 판단하게 했습니다.

전혀 심각하지 않으면 1점, 상당히 심각하다면 7점으로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제시된 시나리오에서 피고인은 말다툼 중 화가 나 연인이던 피해자의 뺨과 머리를 때리고 "죽이겠다"고 말하며 바닥에 넘어뜨렸습니다.

여기에 한 시나리오에서는 피해자가 경찰 진술을 할 때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재판 과정에서도 위축되고 불안해했습니다.

다른 시나리오 피해자는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비교적 침착함을 유지하며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조사 결과 연구 참여자들은 피해자가 '피해자답다'고 기대되는 모습을 보일 때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피해자다움'을 보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건의 심각성에 대한 평균값은 각각 6.38점, 6.00점이었는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저자들은 분석했습니다.

저자들은 "그간 성범죄에 주로 집중해 연구됐던 '피해자다움'에 대한 기대가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데이트폭력 사건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다움' 부합 여부에 따른 편향적 판단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에서도 2021년 5월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바 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성추행 피해자가 피해를 본 뒤에도 가해자와 둘이 시간을 보냈다거나 피해 발생 직후 신고 등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무죄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 외에도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이 진술의 신뢰성을 재단하는 근거로 여겨진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기대나 강요가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수사관이나 판사 등 형사사법기관 종사자뿐 아니라 배심원도 교육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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