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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하늘은 누구 탓?… 인니-말레이 '연무 책임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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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인니 화재로 발생한 연무 때문" 주장
인니 "확인 결과 국경 넘은 오염원 없다" 반박
한국일보

지난달 12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남수마트라의 이탄지에서 소방관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남수마트라=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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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잿빛 하늘’을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최근 햇빛 한 조각도 찾기 힘든 희뿌연 하늘이 이어지고 있는 게 발단이 됐다. 이 같은 대기질 악화의 ‘주범’으로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산불을 꼽는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인과관계가 없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양국 간 공방 속에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는 모습이다.

3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말레이시아 환경부는 “지난주부터 전국 대기질이 크게 악화했다”며 “말레이 반도 12개 지역은 대기오염지수(API)가 건강에 해로운 수준인 100을 넘었고,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155까지 치솟았다”고 발표했다. 이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칼리만탄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발생한 연무가 국경을 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 근거도 내세웠다. 아세안전문기상센터(ASMC) 자료를 인용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지역에선 각각 52개와 264개의 산불 열점(hotspot·핫스팟)이 발견된 반면, 말레이시아에는 단 한 개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열점은 산불 발생 구역을 의미한다. 위성 이미지까지 제시하면서 자국 하늘을 뒤덮은 짙은 연무 원인이 인도네시아에 있다고 쐐기를 박은 셈이다.

말레이시아 주장처럼 실제 인도네시아 곳곳에선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농부들이 땅을 개간하기 위해 열대우림과 이탄지(식물 잔해가 장기간에 걸쳐 퇴적된 유기물 토지)에 불을 놓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서부 수마트라섬 남수마트라주(州)의 경우, 주 전역에서 300건 이상의 산불이 지난달부터 보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진화를 위해 군 병력도 동원했지만, 건조한 날씨로 인해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 상태다. 주정부가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를 독려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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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주 팔렘방 하늘이 산불로 인한 스모그로 뿌옇게 변해 있다. 팔렘방=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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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 정부 발표를 강하게 부인했다. 시티 누르바야 바카르 인도네시아 환경산림부 장관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위성 데이터 확인 결과,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시아로 국경을 넘은 연무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오염원이 넓게 퍼지지 않았다는 자국 기상기후지질청(BMKG) 등의 자료를 앞세우며 “부주의하게 말하지 말라”고 맞받아치며 불쾌함도 표출했다.

외교 문제로까지 번진 책임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화전에 따른 산불은 연례행사나 다름없지만, 올해는 엘니뇨(해수면 온도 상승)로 평년보다 건기가 길어진 탓이다. 비도 거의 내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예년보다 숨 막히는 하늘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019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당시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에서 발생한 화재가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서울 면적(605㎢)의 15.5배인 9,420㎢의 산림이 불에 탔다. 매캐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인접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물론, 남중국해 건너 태국과 베트남까지 대기오염 직격탄을 맞았다. 인도네시아 본토와 1,000㎞나 떨어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도 대기오염 지수가 170까지 치솟았다. 동남아시아 전체가 연무 속에 휩싸이면서 각국은 대기 중 먼지를 씻어내려 인공강우와 물대포 등 대책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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