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다음날, 여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이 돌연 이 대표를 지목하며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내년 총선에 분당갑에서 저와 정면승부를 통해 국민들께 정치적 판결을 받읍시다. 작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이곳은 당연히 이 대표가 출마할 곳이었는데, 저와 경쟁하는걸 피해 인천 계양으로 도망가서 당선되고 당 대표가 됐다는 비판적 시각이 대다수입니다. 내년 총선에서는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분당갑에서 저와 정면승부를 통해 국민들께 심판받겠다는 결단을 하기 바랍니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한껏 위상이 높아진 이 대표를 향해, 흡사 '한 판 붙자'는 결투장처럼 보이는 도발성 메시지를 낸 것은 왜였을까? 이유가 있다.
경기 성남분당갑은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강세를 보여 온 곳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기준으로는 20대 총선에서 IT 기업인 출신 김병관 전 의원 당선이 분당갑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이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판교 신도시 건설로 인한 젊은 층 유입이 당시 김 전 의원 승리의 원인으로 여겨졌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역이던 김병관 전 의원이 49.34%의 지지를 받아 50.06%를 받은 김은혜 현 대통령실 홍보수석에게 석패했고, 지난해 6월 보궐선거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의 단일화로 국민의힘에 입성한 안철수 의원이 후보로 나서 양당 간 격차를 62.50%(안철수) 대 37.49%(김병관)로 더 벌렸다.
보수의 '알토란 지역구' 분당갑 현역인 안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이미 수 차례 밝혀왔다. 지난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에서 험지 출마를 권유한다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한번 당선됐다고 2년도 안 돼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정치인이 제일 중요한 것이 주민들과 약속을 지키는 일이고 그래서 지역을 함부로 옮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당 지도부가 안 의원에게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암묵적으로 '당 대표에 당선되면'이라는 가정이 깔리긴 했지만 안 의원 스스로도 지난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수도권 승리를 위해 험지 출마를 요청하면 기꺼이 따르겠다"고 했었다.
현재 안 의원 측은 험지에 출마하면 다른 후보 지원유세가 어려워져 오히려 전체 판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은 국회의원 재보선을 치르면서도 경기도지사 선거와 인천 계양 보선 지원유세에 나섰고, 현재도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는 등 대선주자이자 전직 IT 기업인으로서의 명성을 활용해 선거 지원 활동을 해왔다.
국민의힘 내에서 안 의원 대신 분당갑 후보로 거론되는 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 지역구 의원직을 내려놓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김은혜 수석이다. 당시 김 수석은 당내 경선에서 유승민 전 의원을 꺾고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맞붙었지만 패배한 뒤 잠시 휴지기를 갖다가 대통령실에 합류했다.
당시 김 수석의 경기도지사 출마를 두고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맞붙었던 유 전 의원을 겨냥한 '자객 공천'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유 전 의원도 "대통령 측에서 정말 별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가지고 저를 떨어뜨리더라"며 "경기도에 국회의원 지역구가 59개 있는데 그곳 당원들을 못 만날 정도로 당시 대통령 측에서 정말 심하게 했다"(작년 12월 KBS 라디오 인터뷰)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안 의원 역시 윤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다.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 신경전을 벌인 구원도 있고, 안 의원의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인수위 시절에도 갈등설이 있었다. 3.8 전당대회 당시 이진복 정무수석 등 용산 관계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안 의원을 견제했다.
그래서일까. 안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대통령 국정지지도 저하, 수능 '킬러 문항' 논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스카우트 잼버리, 이념 공세 등 사안을 놓고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며 각을 세워 왔다. 최근에도 불과 지난 26일 "기초과학기술 R&D 연구비 삭감은 문제를 더욱 증폭할 뿐"이라고 정부 예산안을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의원이 야당의 1위 대선주자인 이 대표의 분당 출마를 촉구하며 '한 판 붙자'고 한 것은 역시 대선주자급인 자신의 위상을 은연 중에 드러냄과 함께 '분당갑은 내 지역구'라는 점을 선제적으로 각인시키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한편 김 수석의 입장에서 봐도, 그의 분당갑 출마는 부담되는 요인이 있다. 작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이어 또 한 번 '자객'으로 활용됐다는 꼬리표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 안팎에 머무는 상황에서 인지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중도층 소구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안 의원을 내치고 대통령실이 독주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도 총선 판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로 옆인 분당을에도 국가보훈부 초대 수장 박민식 장관 출마설이 나온다. 이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의 당협위원장 지원이 있었음에도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지난 29일 '인선 보류' 결정을 내린 것도 박 장관 출마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조강특위 위원장은 '윤핵관' 이철규 사무총장이다.
다만 분당을의 분위기는 분당갑과는 사뭇 다르다. 일찌감치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손학규 전 의원이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바 있고, 최근 두 번의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승리했다. 보수정당에 유리한 지역구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김은혜 수석이 분당갑 대신 분당을 출마로 방향을 틀 가능성도 거론되고, 거꾸로 박민식 장관이 분당갑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여권 일각에서 언급된 바 있다.
▲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가 2022년 5월 29일 경기 군포시 산본 로데오거리에서 열린 총력유세에 안철수 성남분당갑 국회의원 후보와 함께 참석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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