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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치료법, 러 미사일이 날렸다?…"우크라전 8년 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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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폐막 DMZ다큐영화제

러·우크라 전쟁 다큐 12편 기획전

현지 감독 5인 내한 상영·대담

"러·우크라 전쟁 8년 전 시작돼"

중앙일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상을 그린 다큐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지난달 경기도 고양시 일대에서 열린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DMZ Docs)를 통해 한국에 처음 선보였다. 사진 DMZ Do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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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의 시급성 때문에 찍을 수밖에 없었죠.”

지난 17일 한국을 찾은 우크라이나 감독 로만 류비는 이렇게 호소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껏 끝나지 않고 500여만명의 실향민을 낳았다. 국외 망명자는 800여만명에 달한다. 이런 현실을 담은 장‧단편 다큐멘터리 12편과 함께 우크라이나‧폴란드 감독 5인이 지난 21일 폐막한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참석차 내한했다.



우크라·폴란드 감독들 "러 전쟁, 8년전 시작"



영화제 기간(17일) 경기도 고양 꽃전시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기획전 ‘정착할 수 없거나 떠날 수 없는: 너무 많이 본 전쟁의 긴급성’ 대담에는 국외 망명중인 우크라이나 감독 로만 류비(‘철로 만들어진 나비’), 마르타스 메레친스카(‘알로에, 무화과, 아보카도 그리고 드라세나’)와 함께 이웃 폴란드 감독 마치에크 하멜라(‘백미러로 본 전쟁’), 토마시 볼스키‧피오트르 파블루스(‘우크라이나에서’ 공동 연출)가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해 양국의 전면전에 앞서 이미 8년 전부터 전쟁이 지속해 왔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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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마련한 '우크라이나 기획전' 감독들의 대담이 경기도 고양 꽃전시관에서 열렸다. 기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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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비 감독의 ‘철로 만들어진 나비’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의 대치 지역에서 298명이 탄 말레이시아 항공 NH17편(암스테르담~쿠알라룸푸르)이 격추돼 탑승객이 전원 사망한 사건을 좇았다. 당시 사건 주요 원인으로 러시아 미사일 시스템이 지목됐다.



미사일 격추로 에이즈 해결 기회도 잃어



다큐에선 항공경로 스크린샷, SNS 게시물, 위성사진, 휴대폰 사진 등을 이용해 이 참사의 여파를 다각도로 그렸다. 그날 격추된 여객기에는 HIV(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 국제 컨퍼런스에 가던 세계적 전문가들이 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에이즈에 대한 해답을 얻을 기회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다큐는 전한다. 이 사건에 대한 네덜란드 법원의 판결이 나온 2022년, 러시아의 또 다른 미사일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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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철로 만들어진 나비'. 사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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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하멜라 감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큰 전쟁'”이라며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폴란드로 구조하는 차량 봉사에 자원했다”고 덧붙였다.

다큐 ‘백미러로 본 전쟁’에는 이런 활동 중 만난 망명자들의 사연을 담았다. 작은 배낭에 지난 삶을 구겨 담고 탈출해온 이들을 6개월 간 찍고, 1년 간 참고 자료를 보태 편집을 마쳤다. “촬영보단 구조활동이 우선이었다”는 하멜라 감독은 “피난민들이 저한테 마음의 벽을 쌓았다면 영화를 못 만들었을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도, 편집실에서도 많이 울었다. 휘발유는 충분한지, 다음 행선지는 어딘지, 할 일에 집중하려 애썼다. 개개인의 비극에 너무 몰입하면 좌절감에 완전히 잠식될 것 같았다”고 했다.



러 대항 우크라이나 영화운동 2013년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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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백미러로 본 전쟁'. 사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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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로 본 전쟁’은 우크라이나 영화 운동 단체 ‘바빌론 13’이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바빌론 13’은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에 맞서 2013년 우크라이나 다큐 제작자들이 결성한 단체로, 크름반도 합병 관련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참상이 알려지면서, 인접 국가 감독들도 힘을 보탰다.

마르타스 메레친스카 감독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에 12시간 대피하며 여성‧아이들이 밀려드는 광경에 사로잡혔다. 일상의 붕괴라는 강렬한 감각은 파리로 피신한 그가 키이우의 아파트에 두고 온 물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연결됐다. 다큐 ‘알로에, 무화과, 아보카도 그리고 드라세나’에 이런 경험을 담았다.

“전쟁 초반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찌할 줄 몰랐다”는 그는 “국경지대 난민들의 표정을 보며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파리로 가서 난민의 삶의 또 다른 이면을 담는 단편 영상들을 찍게 됐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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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사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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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자신이 집주인과 나눈 연락 내용들도 담았다. 버릴 물건, 택배로 받을 물건을 가르는 과정이 지난 삶의 정리나 마찬가지였다. 다큐에선 무너진 일상의 흔적이 담긴 수백 개의 소포 상자가 다리 아래에서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수백만명이 전쟁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고 있죠.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 비극의 여파는 엄청날 겁니다.” 메레친스카 감독의 말이다.



우크라이나 피난촌서 '리어왕' 공연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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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대전차 장애물의 기도'. 사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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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당시 포위당한 도시 마리우폴에 갇힌 AP통신 우크라이나 취재팀은 지하로 숨거나 무차별 폭격 당한 사람들의 위급한 상황을 20일간 투쟁하듯 기록했다(‘마리우폴에서의 20일’). 추위를 피해 남편과 함께 중동 베두인족 마을로 겨울 휴가를 간 다큐 감독은 휴가지에서 고향이 파괴된 영상을 담은 어머니의 문자를 받는다(‘난 전쟁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 조각가들은 러시아군을 막을 천사, 예수 모양의 대전차 장애물을 제작한다(‘대전차 장애물의 기도’). 우크라이나 서부 피난촌에선 실향민들이 연극 ‘리어왕’을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공연한다(‘리어왕: 우리가 전쟁 중에 사랑을 찾은 방법’).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가진 것 전부를 잃고 내쫓긴 존재들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사랑을 되찾아가는 연극 내용이 허물어진 삶을 잠시나마 지탱해준다. 우크라이나 바깥에선 잘 알 수 없는 이런 상황들이 올해 DMZ영화제 다큐를 통해 관객들에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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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리어왕: 우리가 전쟁 중에 사랑을 찾은 방법'. 사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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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할퀴고 간 풍경을 담은 ‘우크라이나에서’를 공동 연출한 폴란드의 볼스키 감독은 “전쟁은 8년 전에 시작됐지만, 그땐 전 세계가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다”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그때 어떤 형태로든 대응했어야 했다”는 그는 “더 늦기 전에 영화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람들과 동화 되고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서 전쟁을 멈추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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