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에 남녀노소 무차별 참변…담뱃불로 연행자 눈 지져
구금·연행자 가혹행위·성폭행 정황도 수두룩
진상규명조사위, 2023년 상반기 보고서 국회에 제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 모인 시민 |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5·18 계엄군이 국군광주통합병원 확보 작전 과정에서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등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당시 구체적인 상황이 조사위 공식 보고로 확인됐다.
이 작전은 주남마을 학살 사건이나 송암동 학살 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꼽히지만 희생자의 사망 경위 등은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21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회에 보고한 2023년 상반기 조사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위는 '국군광주통합병원 진입로 확보 작전'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사망 경위를 하나하나 조사했다.
작전은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가는 진입로를 확보하라는 상부 지시에 20사단 62연대 22대대가 투입되면서 시작됐다.
1980년 5월 22일 오후 5시 장갑차 3대를 앞세운 계엄군은 진격 과정에서 통합병원 인근 민가 등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호기심에 자택 옥상에서 계엄군을 지켜보던 10대 소년도, 타지에서 일하다 갓 태어난 딸을 보기 위해 친지 집에 잠시 머물던 20대 남성도 계엄군의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신학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18세 재수생은 사격 소리에 놀라 집 근처 골목에 숨어있다가 건너편 골목에서 나타난 계엄군의 총에 맞고 숨지기도 했다.
방위병이었던 손모(당시 20세) 씨도 출근하다 피격당해 사망했는데, 당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그를 도와주려던 석유배달 종사자 양모(당시 30세) 씨도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무고한 민간인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계엄군의 총탄은 거실 유리와 장롱을 뚫고 이불까지 날아와 박혔는데, 가정주부 손모(30) 씨와 5살 아들은 이웃집 창문을 통해 날아든 총탄에 맞아 크게 다쳤다.
계엄군은 가택 수색을 하며 부상자를 도와주던 청년들을 찾아내 구타한 뒤 연행하기도 했다.
국군광주통합병원 인근에는 보안사령부 직속 505보안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만큼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강경한 작전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군이 연행자들을 대상으로 가혹행위를 자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밀폐된 탑차에 연행자들을 가둔 뒤 최루탄을 터뜨리거나 체포된 민간인이 눈동자를 굴렸다는 이유로 담뱃불로 눈을 지져버린 잔혹한 행위도 보고서에 실렸다.
5·18 당시 숨진 시민들 |
조사위는 계엄군의 성폭력 사건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계엄군이 시위 진압 작전 상황이나 연행 과정에서 여성을 강제 추행하거나 귀가 중인 여성을 야산으로 끌고 가 강간했다고 피해자들의 진술을 확인했다.
군용트럭에 여학생을 납치하듯 태워 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시위 참여자를 연행한 뒤 도망가지 못하도록 도심 한복판에 옷을 벗겨 두었다는 계엄군의 진술과 옷을 찢기 위해 군용 대검을 사용했다는 복수의 피해자 진술도 확보했다.
조사위는 5·18과 관련해 교사와 교수, 경찰, 언론인 등이 해직된 피해 사례와 규모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5·18 관련 해직 교사들은 모두 16명으로 광주와 전주 일원에서 5·18 항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부산·강원 지역에서 광주의 진상을 알리는 유인물 제작에 참여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아 해직됐다.
국립 사범대 졸업자 중 일부는 교원 임용에서 제외됐는데 확인된 피해 사례만 5명이다.
시위 진압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직위해제되거나 의원 면직된 경찰은 전남도경 안병하 국장을 비롯해 간부 13명이다.
교수들의 경우 해직자는 모두 87명으로 이 가운데 19명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과 5·18 관련으로 예비검속됐다가 재판에 회부돼 해직됐다.
나머지는 5·18 직전 시국선언을 하거나 성명을 냈다가 해직된 이들로 5·18 관련자로 볼 수 있을지 확인이 필요하다.
조사위는 이외에도 최초 발포와 집단 발포 책임자, 행방불명자 규모·소재, 암매장지 소재·유해 발굴 등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말로 예정된 조사 완료 기간까지 광범위하게 남은 과제를 모두 규명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사위 관계자는 "43년이 지난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da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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