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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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OTC, '자금세탁' '환치기' 진원지= 이날 아카데미에서 '가상자산 관련 형사법적 문제' 세션 토론자로 참석한 기 부부장검사는 OTC 업체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법 가상화폐 OTC 업체들이 해외에 법인을 두면서 불법으로 얻은 가상화폐를 원화나 외화로 바꾸는 사업을 하고 있다"며 "이 업체들을 미신고 가상자산 매매업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 부부장검사가 언급한 가상화폐 OTC는 업비트, 빗썸 등 공식적인 인증을 받은 거래소가 아닌 곳에서의 가상화폐 거래를 의미한다. 일반 주식으로 비유하면 비상장주식 거래가 이뤄지는 장외거래에 해당한다. 미인증 가상화폐 거래소를 이용한 거래나 개인 간 거래(P2P) 모두 가상화폐 OTC에 해당된다.
OTC는 기밀 및 익명성을 유지하길 원하는 투자자들이 가상화폐를 거래할 때 쓰인다. 고액투자자들이 주로 사용해 '상위 1%의 시장'이라고도 불린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경우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규제 대상에 해당해 거래 내역 등이 감시되지만, OTC에선 별다른 감시 없이 대량의 가상화폐를 서로 원하는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상화폐가 대량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에 상장된 가상화폐가 192종인 데 비해 한 OTC 거래소는 700종이 넘는 가상화폐의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로 모르는 개인들이 아무렇게나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는 없으니, 가상화폐 OTC에도 거래소와 같은 플랫폼이 존재한다. 일종의 '암시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거래소의 개인 간 거래 항목에 들어가면 판매자들이 인터넷 쇼핑몰에 물건을 올려놓듯 일정 수량의 가상화폐와 가격을 제시한다. 원하는 가상화폐가 있다면 게시물을 선택한 후 판매자의 가상화폐 지갑에 비트코인 등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가상화폐를 지불하면 된다. OTC 시장에서 개인과 개인이 별다른 추적이나 감시 없이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가상화폐 OTC 시장은 해킹이나 랜섬웨어 등 범죄로 취득한 가상화폐를 추적할 수 없도록 자금을 세탁하고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데 활용된다. 정식 금융시장을 거치지 않은 불법 외환거래나 시세 조종을 위한 허위 거래 등에도 이용된다. 실제 국내에서 OTC를 이용해 불법 외환거래를 한 외국인·탈북민이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2월 인천지검 국제범죄수사부는 특정금융정보법과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리비아 국적의 40대 남성 A씨(44)와 탈북민 B씨(43)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리비아인들의 의뢰를 받고 해외 OTC에서 940억원 규모의 가상화폐를 매수한 후 국내로 전송해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불법 외환거래를 한 혐의를 받는다.
다만 아직 OTC 자체를 제어할 규정이 국내에는 없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는 특정금융정보법 제10조에 따라 가상화폐 OTC 업체를 통해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없지만, 일반 투자자의 경우 불법 외환거래로 외국환거래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마땅히 제재할 수는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를 통한 불법 외환거래 규모는 약 5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검찰이 OTC 시장에 관심을 갖는 배경에도 범죄와의 연관성이 크다는 판단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가상화폐 OTC를 언급한 것은 가상화폐 범죄 유형에 대해 논의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하나의 과제를 던진 것"이라며 "불법 가상화폐 OTC 수사와 관련해 계속 연구하고 고민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가상화폐를 자금세탁하려면 불법 가상화폐 OTC를 거쳐야 한다"며 "수사기관 입장에선 불법 가상화폐 OTC를 적극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가상화폐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가상자산합수단 소속 검사가 OTC를 이례적으로 언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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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예치업, 고위험 투자해도 알 방법 없어= 가상화폐 예치업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나왔다. 박민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추진 경과 및 내용'을 발표하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 국내에서는 가상화폐 예치 서비스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감독·처벌 및 이용자 피해 구제를 위한 법 체계 마련을 위해 제정된 가상자산법은 지난 6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내년 7월 정식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의 개념과 가상자산사업자의 의무부터 미공개정보 이용행위 금지, 시세조종행위 금지, 사기적 부정행위 금지 등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규정을 담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가 가상자산법의 여러 내용 중 가상자산 예치업을 중점적으로 짚은 것은 그만큼 가상자산 예치업이 사기 등 불법적 성격이 짙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상화폐 예치업은 돈을 맡기면 이자로 돌려주는 은행처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맡기면 정해진 이율로 가상화폐, 즉 이자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자를 주기 위해 예치업체들이 택하는 방법은 대체로 자산 운용이다. 고객들이 맡긴 돈을 가상화폐에 투자해 가상화폐를 불리는 방식이다. 업체들은 가상화폐 시세가 떨어지는 하락장에도 나름의 노하우를 통해 수익을 올려 이자를 나눠준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현재 관련 규제가 없어 가상화폐 예치업체가 고객에게 투자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고수익·고위험 가상화폐에 투자해 손실을 보거나 사적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기 위해 쓰더라도 예치를 한 고객들은 업체가 알리지 않는 이상 이 사실을 알 수 없다.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 대표적 사례가 델리오·하루인베스트 입출금 중단 사태다. 이들 업체는 고객들에게 투자처를 알리지 않았다가 지난 6월 가상화폐 출금을 돌연 중단했다. 하루인베스트는 자신이 돈을 맡겼던 비앤에스홀딩스(B&S)에 문제가 생겼다며 출금을 막았다. 연이어 델리오도 하루인베스트에 투자한 사실을 알리며 뱅크런(대규모 인출)을 막기 위해 출금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실을 몰랐던 고객들은 구체적 투자 내역과 손실 규모를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델리오와 하루인베스트는 곧바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고객들은 델리오와 하루인베스트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합수단이 수사하고 있다. FIU는 지난 1일 델리오에 대해 과태료 18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임원 1명 해임 권고 및 영업정지 3개월을 처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7월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 가상자산 예치업은 사실상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상자산법 제7조 제2항은 가상자산사업자가 이용자로부터 위탁받은 가상화폐와 동일한 종류, 수량의 가상화폐를 실질적으로 보유하도록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가상자산 예치 업체가 고객들로부터 예치받은 가상화폐를 다른 곳에 투자·운용할 수 없다. 사실상 가상화폐 예치업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사 및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시장에 대해 연이어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어느 정도 제재 관련 가이드라인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가상화폐 시세조종과 자금세탁 등에 더욱 강한 제재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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