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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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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의 MLB스코프] 전문 너클볼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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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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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너클볼은 최후의 보루였다. 막다른 길에 몰린 투수들이 마지막으로 도전해보는 구종이 너클볼이었다. 데뷔 때부터 너클볼을 앞세운 투수는 호이트 윌헴과 필 니크로 정도다. 두 투수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너클볼은 돌연변이다. 그래서 던지는 투수가 각 시대마다 손에 꼽힌다. 윌헴과 니크로를 필두로, 찰리 허프와 톰 캔디오티, 팀 웨이크필드, R A 디키가 너클볼러를 계승한 대표적인 투수들이다. 소수 정예로 구성되다보니 그들만의 유대관계도 끈끈하다. 웨이크필드는 니크로의 도움을 받았으며, 디키는 허프에게 너클볼을 전수 받았다. 2012년 자신만의 고속 너클볼로 사이영상을 수상한 디키가 너클볼의 전성기를 이끈 마지막 주자다.

이후 너클볼은 점점 희미해졌다. 던지는 투수는커녕 던지겠다고 나선 투수도 볼 수 없었다. 2021년 'LA타임스'는 너클볼이 "종이 티켓 같은 유물이 됐다"고 보도했다.

사실 너클볼의 쇠퇴는 예견된 일이었다. '너클볼의 대부' 니크로조차 너클볼이 성행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니크로는 더 많은 너클볼러가 나올 수 없는 핵심을 꼬집었다.

"누가 가르칩니까?"

1990년 이후 30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너클볼러는 11명이었다. 웨이크필드와 디키는 잘 알려졌지만, 이름이 생소한 투수들이 대부분이다. 찰리 징크, 찰리 헤이거, 에디 감보아는 메이저리그에서 20경기도 던지지 못했다. 너클볼은 손에 넣으면 롱런을 보장해주는 공이지만, 그만큼 손에 넣기 어려운 공이었다. 한평생 너클볼만 연구한 니크로도 자신이 제대로 된 너클볼을 던졌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잊혀가는 너클볼을 상기시켜 준 선수는 2021년 미키 재니스였다. 2010년 드래프트 44라운드에서 지명된 재니스는 10년 넘게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를 전전했다. 재능이 메이저리그에 미치지 못했었다. 하지만 열정으로 버틴 끝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뤄냈다.

33세 늦깎이 투수 재니스는 너클볼을 던져서 더 주목을 받았다. 2021년 6월 24일 경기 두 번째 투수로, 리그 최고의 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했다. 재니스는 첫 타자 요르단 알바레스를 너클볼 4개로 루킹 삼진 처리했다. 이 기세를 몰아 5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이 기쁨은 잠시였다. 다음 이닝에 첫 실점을 한 재니스는 7회 초 선두타자로 나온 알바레스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그리고 홈런 두 방을 더 내주면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재니스의 데뷔전 성적은 3⅓이닝 8피안타 4볼넷 7실점이었다.

재니스는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기회를 받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서 11년을 보냈지만, 메이저리그에 머무른 시간은 단 4일이었다. 이상과 달리 현실은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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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니스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메이저리그에서 물러났다. 너클볼 회의론이 또 다시 대두되는 찰나, 올해 다음 도전자가 등장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맷 왈드론이었다. 훈련 때 장난삼아 너클볼을 던졌던 왈드론은, 동료들의 권유로 너클볼을 진지하게 연마했다. 그리고 6월 25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 데뷔하면서 또 다른 너클볼러로 이름을 올렸다.

왈드론은 기존 너클볼러와 조금 달랐다. 이전까지 너클볼러들은 너클볼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체 레퍼토리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직전 너클볼러 재니스도 71구 중 57구가 너클볼이었다(너클볼 80.3% 포심 12.7% 커브 7%). 그런데 왈드론은 너클볼을 주무기로 쓰면서도 너클볼 비중은 20% 수준이었다. 너클볼만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왈드론의 구종별 비중 (%)

24.1 - 싱커
23.9 - 너클볼
23.2 - 포심
16.6 - 슬라이더
12.2 - 커터


일반적으로 너클볼은 다른 구종과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던지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너클볼은 손가락 관절의 힘으로 밀어야 하는데, 다른 구종은 어깨와 팔의 회전이 중요하다. 왈드론은 이러한 통념을 뒤로 하면서 독자적인 너클볼러로 거듭나는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왈드론 역시 아직 무미건조하다. 약 한 달만에 나온 선발 등판에서 5이닝 4실점에 그쳤다. 시즌 5경기 성적도 3패 평균자책점 5.55에 불과하다(24⅓이닝 15삼진 7볼넷 6피홈런). 만약 왈드론마저 부진하면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의 인기는 더 떨어질 것이다.

너클볼러는 왜 외면 받고 있을까. 일단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구속과 회전수의 시대다. 더 빠르고, 더 화려한 공이 대세다. 구속이 느리고 회전이 거의 없는 너클볼은 시대에 반하는 구종이다. 실제로 구속과 회전수가 뛰어난 투수들이 좋은 결과를 내면서, 각 팀들도 이 두 가지를 갖춘 투수들을 찾고 키우는 데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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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클볼의 불확실성도 부담스럽다. 너클볼은 투수도 어디로 향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명예의 전당 타자 윌리 스타젤은 너클볼을 "딸꾹질 하는 나비"라고 표현했다. 조용한 클래식이 갑자기 변주를 한다. 이에 너클볼을 받는 포수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는 왈드론과 호흡한 루이스 캄푸사노를 보면서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캄푸사노는 공을 제대로 포구하는 것도 힘겨워했다. 포수 패스트볼 두 개로 멘탈이 흔들린 탓에 실책까지 두 차례 저질렀다.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규정하고도 궁합이 맞지 않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주자 견제를 제한함과 동시에 베이스 크기를 확대하면서 적극적으로 뛰는 야구를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너클볼러는 특성상 주자를 묶는 데 취약하다. 왈드론도 도루 5개를 내주고 있다. 아무리 팝타임이 빠른 포수라고 해도 투수의 도움이 없다면 도루를 저지하는 건 쉽지 않다. 심지어 포수는 주자를 신경 쓰는 데 앞서 너클볼을 받는 것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너클볼러는 주로 대기만성형 투수가 많았다. 몸에 부담이 덜한 덕분에 늦게 출발해도 늦게까지 달릴 수 있었다. 윌헴은 49세, 니크로는 48세, 허프는 46세, 웨이크필드는 44세, 디키는 42세까지 뛰었다. 디키가 사이영상을 따낸 나이도 37세였다.

문제는 메이저리그에서 달라진 유망주들의 입지다. 유망주들이 현재이자 미래로 여겨지면서 만학의 너클볼러를 기다려 줄 여유가 없어졌다.

오늘날 메이저리그는 빠르게 올라와서 빠르게 올라서는 선수들을 선호한다. 팜 시스템이 체계화되면서 기회를 엿보는 선수들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벤트성으로 너클볼러를 기용할 수는 있지만, 재빨리 눈도장을 찍지 못하면 곧바로 다음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환경 자체가 많이 바뀌었고, 이 바뀐 환경은 너클볼러들이 안착하는 데 있어 불리하게 작용된다.

과연 너클볼러는 다가올 메이저리그에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성공한 너클볼러는, 다음 투타겸업 선수만큼이나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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