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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비트코인 현물ETF 상장 하세월? 구리를 되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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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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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가격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4000만원에 육박했던 비트코인이 8월 말 3500만원대로 떨어진 뒤 계속 횡보하는 모양새다. 주식·채권보다 변동성이 큰 것이 코인 시장의 특징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들 시장의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맥을 빠지게 하고 있다. 이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메가톤급 재료가 전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다. 블랙록의 ETF 신청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받아줄 경우 대규모 수요가 발생해 비트코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ETF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에 코인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비트코인 ETF 상장은 2012년 구리 현물 ETF를 둘러싸고 SEC와 신청사인 JP모건 간에 벌어졌던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면 SEC의 향후 행보에 대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당시 구리 ETF는 신청 후 2년간의 조율 끝에 SEC의 감시공유계약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제대로 된 투자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재연된다면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도 감시공유계약이 승인의 핵심이다. 아울러 승인까지 기간도 만만찮게 걸릴 것임을 예고한다. 과거와는 다른 다양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ETF 상장에 대한 섣부른 기대보다는 차분한 기다림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ETF 승인 걸림돌, 가격 조작 우려

감시공유계약은 2012년 JP모건이 구리 현물 ETF의 상장 승인을 받는 과정을 밟을 때 처음 등장했다. JP모건은 구리 현물 ETF를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시키기 위해 2010년부터 SEC에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기존 구리 유통사들의 강력한 반대와 ETF 상장 이후 시장 조작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SEC에서는 JP모건의 구리 현물 ETF 승인을 반려한 근거로 가격 조작 가능성을 첫 번째로 지적했다. 구리와 같은 금속 시장은 참여자 자체가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몇몇 대규모 계약만으로도 가격이 출렁거릴 수 있다. ETF를 매수한 개인투자자들은 이럴 경우 인위적인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구리를 원자재로 사용하는 산업계에서는 JP모건이 ETF를 신청하기 이전에 구리 현물을 대규모로 확보하면서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물 ETF 자체적으로도 가격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현물 ETF는 거래 규모만큼 실제 현물을 수탁 형태로 보유해야 한다. 즉 100만달러 규모의 구리 현물 ETF를 발행하려고 한다면 발행사는 해당 금액만큼의 실제 구리를 수탁 업체를 통해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럴 경우 원자재를 필요로 하는 산업계의 구리 수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또 산업 수요와 관계없는 비축 물량으로 가격이 널뛰기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에는 실제 근거가 있다. 2010년 팔라듐 현물 ETF가 출시됐을 때 현물 가격이 불과 2개월 만에 연고점을 돌파했다. 2004년 금 현물 ETF가 상장되고 나서 금 가격은 8년 동안 280% 이상 상승했다. 금융 업계에서는 ETF가 현물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가격 조작 우려 불식할 감시공유계약

JP모건이 이 같은 반대를 불식한 데에는 감시공유계약이 핵심 역할을 했다. JP모건은 2010년 구리 현물 ETF 상장 신청서를 처음 제출한 이후 승인받기 위해 SEC에서 무려 2년간 심사와 검증을 받았다. 그 결과 2012년 12월 상장 승인을 받았지만 산업계의 우려는 끝까지 해소하지 못했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 SEC는 JP모건에 3자 간의 감시공유계약을 제안했다. 감시공유계약을 구성하는 3자는 ETF 발행사, 거래를 중개하는 거래소, 현물을 관리하는 수탁사로 구성된다. 세 주체가 시장 상황과 가격 움직임을 공동으로 실시간 조사하고 결과를 공유한다. 이를 통해 현물 시장과 ETF 시장 간 괴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추고 불의의 시장 충격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가격 조작을 방지한다.

JP모건이 SEC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구리 현물 ETF는 추가 보완 조치를 거쳐 2013년 시장에 본격적으로 거래된다. 현물 ETF 상장 이후 구리 가격은 시장의 우려와 달리 지속적인 약세를 보이다가 8년 만인 2021년에야 승인 당시 가격을 회복했다. 감시공유계약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코인베이스, 수탁 가능하나

비트코인 현물 ETF의 감시공유계약에도 이 같은 구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블랙록이 ETF를 발행하고 거래를 중개하는 거래소는 나스닥이 맡는다. 비트코인 현물을 관리하는 수탁사로는 현재 코인베이스가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 중 코인베이스가 오히려 현물 ETF 승인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탁사의 필수 조건인 신용을 갖췄는지에 물음표가 붙고 있어서다. ETF 상품에서 현물을 관리하는 수탁사의 신용은 전통 금융권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따라서 전통 금융권에 속하면서 규제 기관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수탁사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코인베이스는 현재 SEC와 미등록 증권 판매 등을 놓고 법적 분쟁을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가상자산 수탁 부문에서도 지난 2월 SEC와 수탁 요건 강화 규칙을 놓고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과거 전통 금융권에서 가상자산 수탁을 맡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블록체인·가상화폐 업체들로 구성된 신생 수탁사들에 대한 불신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기도 했다.

구리 ETF는 2년, 비트코인은 얼마나?

이 같은 사항을 고려할 때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까지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JP모건의 구리 현물 ETF도 2010년 10월 처음 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승인까지 2년이 걸렸다. 비록 여러 자산운용사와 가상화폐 투자사들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신청서를 2017년부터 제출했지만 규제 기관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형식을 갖춘 신청은 블랙록이 사실상 처음이다.

특히 코인베이스를 대신할 수탁 업체를 전통 금융권 내에서 물색하기 어렵다는 것도 현물 ETF 승인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유로넥스트 암스테르담 거래소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은 피델리티를 수탁사로 지정했다. 하지만 블랙록이 경쟁사인 피델리티를 수탁사로 선정할 가능성은 낮다. 코인베이스가 법적 분쟁을 빠르게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기대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에서는 최근 비트코인 현물 ETF의 연내 승인 가능성을 75%로 전망했다. 에릭 발추나스 ETF 전문 연구원은 승인 시 최대 30조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최근 비트코인 시장은 ETF와 관련한 소식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8월만 해도 그레이스케일이 SEC에 제기한 비트코인 신탁의 ETF 전환과 관련한 소송에서 승소를 거두자 비트코인 가격이 5%대 급등을 했다가 9월 초 SEC가 블랙록 ETF 승인을 연기하자 다시 6% 이상 하락했다. 이처럼 비트코인 가격이 현물 ETF의 승인 관련 소식에 휘둘리는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용영 엠블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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