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800년 지나도 ‘영롱한 빛’… 고려 나전칠기 귀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3세기 고려 나전공예 진수 보여줘

무늬 제작에 자개 4만5000개 쓰여

황동 선의 굵기는 0.3mm에 불과

7월 日서 매입… 문화재 지정 추진

동아일보

문화재청 관계자가 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올해 7월 일본에서 환수한 13세기 고려시대 ‘나전 국화 넝쿨무늬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지갯빛이 감도는 2.5mm 크기 자개엔 국화 꽃잎의 주름이 하나하나 새겨졌고, 이 같은 조각 10점이 만발한 국화 한 송이를 이뤘다. 국화 넝쿨무늬 770개와 모란 넝쿨무늬 30개, 그 주변을 두른 연주 무늬(구슬을 꿴 듯한 문양) 1670개가 가로 33cm, 세로 18.5cm, 높이 19.4cm 크기의 직사각형 상자를 감쌌다. 약 800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영롱한 빛이 또렷했다. 무늬를 만드는 데 쓴 자개는 모두 4만5000여 개에 이른다.

13세기 고려 나전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나전 국화 넝쿨무늬 상자’가 일본에서 국내로 환수돼 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올해 7월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정교한 문양이 고려 나전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아일보

‘나전 국화 넝쿨무늬 상자’의 국화 넝쿨무늬. 문화재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화 넝쿨무늬를 감싼 황동 선의 굵기는 0.3mm에 불과하다. 이용희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당시 이 정도 굵기로 금속선을 가공할 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었다”며 “당대 최고의 공예술이 집약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나전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며 고려나전을 예찬했다.

상자 뚜껑의 국화 넝쿨무늬와 모란 넝쿨무늬는 각각 13, 14세기 유행한 것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13, 14세기 문양의 변천 과정이 반영돼 나전공예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유물은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X선 분석 결과 목재 틀 위에 직물을 입힌 뒤 골분(骨粉·동물 뼈를 분쇄한 가루)을 섞어 옻칠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개 무늬는 최고급 전복 껍데기에 칼로 섬세한 문양을 새겨 잘라낸 뒤 가장자리를 매끄럽게 갈아내는 ‘따내기’ 기법으로 제작됐다. 상자에선 장석(裝錫·목가구에 장식이나 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을 붙였다 뗀 흔적도 나왔다. 처음엔 잠금장치가 있는 함(函)으로 제작됐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현존 고려 나전칠기는 총 15점(국내 3점, 일본 영국 미국 등 국외 12점)이 파악됐으나, 이 상자가 새로 확인되면서 1점이 추가됐다.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된 경위는 파악되지 않았다. 일본의 한 가문에서 100년 넘게 소장하던 것을 2020년 일본인 소장자가 사들였고, 그가 지난해 7월 재단에 연락해 소장 사실을 알렸다. 상자는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문화재청이 추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보물로 지정된 ‘나전 모란 넝쿨무늬 경전함’(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다 정교함과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