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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신부와 ‘꽃의 시인’ 스님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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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왼쪽부터 심곡암 주지 원경 스님과 도미니크 수도회 김인중 신부. 김 신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충남 청양 빛섬 아트갤러리에서 올해 4월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이다. [사진 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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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스님이랑 제가 수도복을 입어서 거룩해보이죠. 그러나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아요. 수행은 우리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해야 세상에 평화가 옵니다.”(김인중 신부)

“신부님 그림은 구상이 아니고 추상이잖습니까. 작업을 하면서 보니 구상은 생각을 고정시키는데, 추상은 감상하면서 무한히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원경 스님)

종교의 차이를 넘어 한 권의 책을 함께 펴낸 두 사람의 말이다. 새로 출간된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파람북)은 일종의 시화집이다. 재불화가로 이름난 김인중 신부(도미니크 수도회)의 스테인드글라스·회화·세라믹 등 작품 사진과 원경 스님(북한산 심곡암 주지)의 시가 함께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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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원각사 무료급식소도 운영하고 있는 원경 스님은 2010년 시집 『그대, 꽃처럼』을 펴낸 시인이다. 그는 김 신부와 함께 28일 간담회에 참석해 “처음에는 시화집을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에 주저했다”며 “한편으로 신부님도 저처럼 수행의 길을 나선 분인데, 절집의 어른을 섬기듯 모셔야겠다는 마음을 냈다”고 말했다. 책에 실린 시의 상당수는 김 신부의 작품을 직접 보고 새로 썼다. 그는 “긴 옷깃을 펼치며 너울 대는 듯한 느낌에서 사찰의 승무가 떠올랐다”며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이상으로 신부님이 세계적인 작가라는 데 놀라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0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 훈장 오피시에를 받은 김인중 신부는 사르트르 대성당 지하를 비롯해 유럽 40여곳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으로 유명하다. 서울대 회화과를 나온 그가 사제의 길에 뜻을 두게 된 건 프랑스 유학 전, 당시 소신학교에서 장차 사제가 될 청소년들에게 2년간 미술을 가르치면서다. 유교적 집안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자란 그는 1974년 스위스에서 사제 서품을 받을 때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동생인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그가 김포공항에 사제복 차림으로 돌아오자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패션”인 줄 알았다고 한다.

책 제목의 ‘빛섬’은 흔히 ‘빛의 화가’로 불리는 그의 한글 호. 원경 스님은 이를 도심의 불빛이자 하늘에서 내려온 빛으로 풀이한다.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빛섬이 되었다/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도시바다의 빛섬”(시 ‘빛섬과 달빛’ 중에서). 원경 스님은 이번 책에 대해 “저희의 마음이 독자들의 삶 속에 전달되어 가정에도, 이웃에게도 화합과 사랑이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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