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도 물가와 통화정책이 안정되고 유동성이 받쳐 주면 자국 통화로 대외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1999년 나온 유명 가설인 '원죄가설(Original Sin Hypothesis)'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한바다 한은 경제연구원 국제경제연구실 과장은 14일 '신흥국 원죄의 소멸 원인에 대한 실증 연구'라는 제목의 BOK경제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원죄 가설은 1999년 세계적 석학인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와 리카르도 하우스만 교수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신흥국은 자국통화로 대외자본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 가설은 신흥시장국의 대외자본 조달의 구조적 취약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학계와 정책 당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신흥시장국의 자국 통화표시 대외부채 비중이 높아지면서 원죄 가설의 정당성에 대한 여러 의구심이 커졌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 투자자들이 신흥국 국채시장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원죄의 소멸'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 과장이 발표한 보고서도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채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 채권시장이 발달하면서 선진국이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실시한 실증분석에서는 공공부문 채권시장 규모와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 잔액은 강한 양의 관계를 갖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신흥국 채권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유동성이 좋아지고, 신흥국 채권시장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 과장은 "(자국) 채권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건 신흥국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렇다면 신흥국은 자체적으로 대외자본을 조달할 수 없다는 원죄가설에는 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2000년 이후 여러 신흥국이 물가안정 목표제를 도입한 것도 대외자본의 신흥국 채권시장 유입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 물가가 물가 목표치에 근접할수록 해외투자자가 더 많은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채권을 보유한 해외투자자들의 경우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 변동에 민감한 만큼 중앙은행 신뢰성을 중시하는데, 이런 실증분석 결과는 해외투자자들이 물가안정을 통화당국의 신뢰성의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한 과장은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유동성을 높이고, 물가안정을 통해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확보하면 신흥국도 충분히 자국통화로 대외자본을 조달해 원죄가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한 과장은 이를 우리나라 측면에서 보면, 결국 안정적인 통화정책과 물가 관리가 국내 채권시장의 매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채권,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주식 및 채권시장의 규모와 전반적인 시장 유동성이 중요하다"며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대외건전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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