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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오야마 세이지 목사 "한국에 대한 사죄는 우리교회 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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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만행 사죄운동한 아버지 뜻 이어받아…"日, 한국 은혜받았다"

"바꿀 것은 바꾸고, 못 바꾸는 것은 받아들이는 용기 달라고 기도"

연합뉴스

인터뷰하는 오야마 세이지 목사
(용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는 운동을 벌였고, 올해 5월 별세한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의 차남 오야마 세이지(淸仁) 목사가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시 소재 새에덴교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8.14 sewonlee@yna.co.kr


(용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한국인 마지막 한 명까지 용서할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는 운동을 벌였고, 올해 5월 별세한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의 차남 오야마 세이지(淸仁·64) 목사는 부친의 생전 발언을 이같이 전했다.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한 세이지 목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제의 가해 행위를 직시하고 평생 사죄와 화해의 길을 모색했던 레이지 목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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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3·1운동 보복 제암리 집단학살 명부
[국가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레이지 목사는 한국, 필리핀, 중국, 대만,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등 일본이 전쟁 중 가해 행위를 한 국가를 돌며 사죄 운동을 벌였다.

레이지 목사가 처음 찾아간 곳은 필리핀이었다.

그는 차남 세이지가 태어나기 직전인 1958∼1959년 무렵 반년 짜리 비자를 받아 필리핀을 방문했다.

당시는 필리핀 외딴섬 주민들 사이에 일본인에 대한 반감이 높던 시절이었다. 레이지 목사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야간 종교 집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인 주민들이 목사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반발하기도 했고 혈기 왕성한 청년이 덤벼들거나 목을 조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레이지 목사는 호소했다.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나의 사죄 메시지를 들어 주세요."

레이지 목사는 필리핀에 다녀온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가 됐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사죄 운동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1960년대에 이웃 나라 한국을 방문한 그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제암리 학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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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 학살사건 희생자 23인 조각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1919년 3·1 만세 운동의 열기가 전국으로 퍼졌고 제암리 인근 장터에서 3월 31일 약 1천명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는데 일제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같은 해 4월 중순 기독교·천도교 신자인 남성들을 교회에 가두어놓고 불을 질러 살해했다. 제암 교회에 따르면 당시 23명이 희생됐다.

레이지 목사가 제암리 학살 사건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사죄의 뜻을 전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처음 제암리를 향했을 때 학살 피해자 유족은 '일본인은 오지 말라'며 만남을 거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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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교회서 사죄하는 일본 기독교인들
(화성=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 100주년을 앞두고 일한친선선교협력회 일본 기독교인 17명으로 구성된 사죄단이 2019년 2월 27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제암교회 예배당 바닥에 엎드려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레이지 목사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 기독교 운동을 함께 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을 다시 찾는 등 간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레이지 목사 등은 사죄의 뜻으로 제암리에 교회를 다시 짓기 위해 일본에서 1천만엔(당시 기준 약 800만원)을 모으기도 했다. 속죄의 의미를 담은 헌금이 투입된 제암교회는 1970년 준공됐다. 다만 현재는 이 교회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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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레이지(오른쪽) 목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레이지 목사 등 일한친선선교협력회 소속 기독교인 17명은 제암리 사건 발생 100년을 앞둔 2019년 2월에는 제암교회를 방문해 사죄의 뜻을 담아 절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8년에는 평양 봉수교회를 방문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문을 발표하는 등 북한에도 사죄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부친의 뜻을 이어받은 세이지 목사는 지난달 하순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한·일 친선 회복 예배'에서 설교하며 한일 친선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성서그리스도교회 도쿄교회를 이끄는 세이지 목사는 인터뷰에서 "한국, 가까운 이웃 국가에 대한 사죄의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모토"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오랜 역사적 교류를 염두에 두고서 "일본은 한국을 통해 여러 가지 은혜를 받았다"면서 양국은 형제 같은 관계이고 근래에 이어진 역사 갈등이 서로 닮은 듯 다른 형제의 다툼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다만 사죄하고 한국과 화해를 모색하는 활동이 부친이 택한 것과는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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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세이지 목사
(용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는 운동을 벌였고, 올해 5월 별세한 일본인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 목사의 차남 오야마 세이지(淸仁) 목사가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시 소재 새에덴교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8.14 sewonlee@yna.co.kr


세이지 목사는 마지막 한 명이 용서할 때까지 사죄한다는 것에 대해 "슬로건으로서는 훌륭하지만, 현실적으로·구체적으로 헤아릴 수가 없다"면서 어디까지 무엇을 하면 좋은지, 일본인은 그냥 계속 사죄하면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나는 일한 관계가 '미안합니다', '용서합니다'가 아니라 '그러면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지 않겠느냐'라고 제안하거나 혹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세이지 목사는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내놓은 제삼자 변제(대위변제)에 반대하는 일부 유족이나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충분히 시야에 넣고서"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 기여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세이지 목사의 지론이다.

"평화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부디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가리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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