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한미연합과 주한미군

[단독] 미국,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여단급 부대 파병 제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올 3, 4월 한미 고위급 외교안보 채널 통해
미 측, 대만 유사시 파견 필요성 재차 언급
최대 5000명 규모…구체 수치 처음 드러나

미국이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여단급 부대를 파병할 것이라고 우리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만해협의 군사적 충돌에 맞서 주한미군 차출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구체적 규모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의 군사위협에 한반도 안보가 영향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한미 양국은 지난 3, 4월 고위급 외교안보 채널을 통해 인도·태평양(인태) 권역에서의 무력충돌 시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와 규모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시점이다.
한국일보

미군의 동아시아작전 구상도와 미 인도태평양 육군 전구의 다영역 준비태세를 엿볼 수 있는 '패스웨이즈 작전' 구도. 그래픽=김문중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군 소식통은 "미 측에서는 이전부터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 문제를 다루길 원했지만 한국 정부는 공식 협의에 소극적이었다"면서 "그럼에도 구체적 병력 규모를 언급하며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미 측이 최근 언급한 대만 파병 주한미군 규모는 여단급(3,000~5,000명)으로 전해졌다. 경우에 따라 최대 5,000명의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국방부는 본보 질의에 "미국과 주한미군 파견을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반면 윤석열 정부 전직 고위당국자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감안해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을 최소한의 규모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파병을 막을 수 없더라도 한반도 여건을 감안해 파장은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협의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미 측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해온 만큼 결정적 순간에는 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방부는 2014년 미 당국과 주한미군이 제기해 온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협의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부인해오다 뒤늦게 입장을 바꾼 전례가 있다.
한국일보

지난달 18일 미국 해군의 전략핵 잠수함인 켄터키함(SSBN 737·사진 가운데)이 부산작전기지로 입항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처럼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건 주한미군 일부 차출이 자칫 한반도 안보를 저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주한미2사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할 당시 곤욕을 치른 전례도 있다. 최근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가동해 북한의 도발위협에 맞선 독자적 핵무장 여론을 겨우 잠재운 마당에 주한미군 해외 파견 가능성이 거론되면 국민 불안감이 다시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미 측은 대북 확장억제 역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파병 규모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논의에 정통한 다른 소식통은 "당초 미국은 대만 유사시 한국군의 역할에까지 관심을 보였다"면서 "하지만 한국 정부가 북핵·미사일 고도화의 심각성을 설명하자 주한미군으로 범위를 좁혀 파견 규모를 최소한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육군 제1기갑여단장을 지낸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은 "5,000명이면 큰 규모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한미8군을 경기 평택으로 재배치한 이유는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투입하기 위한 것이라 대만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지난 3월 전반기 한미연합연습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 연습 시기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U-2S 고고도정찰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2006년 전략대화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동맹으로서 미국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적시했다. 다만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를 근거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투입은 우리와 반드시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2006년 당시 합의에 관여한 전직 당국자는 "원래 '협의'라는 단어를 넣으려고 했지만 '존중'이라는 모호한 단어가 들어갔다"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전략적 유연성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동의하지 않아도 주한미군의 대만 파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은 주한미군 임무수행 범위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권역의 분쟁지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전 세계 미군의 기동성과 역할을 점검하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를 승인했는데 주한미군 또한 대상에 포함됐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해 "인도‧태평양지역 안정화는 주한미군 임무 범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은 미 연방법 10조에 근거해 한미연합사령부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한반도를 벗어나 인태사의 대중국정책을 수행하는 데 투입될 수 있다. 미 태평양육군사령부 참모장인 제임스 바솔로미스 준장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태평양육군사령부의 주요 임무와 인태 지역의 안보'를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주한미8군은 제2보병사단/한미연합사단을 지원하면서 전략적 유연성을 이행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주한미군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예하 어느 부대가 이동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앞서 1월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워게임 결과, 미국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주한미군 4개 전투비행대대 가운데 2개 대대를 출격시키고 지상군 2만8,000여 명 중 핵심인 미 육군 2사단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