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여행(6) 샤토네프뒤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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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아비뇽에 교황청이 있던 14세기. 당시 아비뇽 교황청 궁전에는 67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이 재위했다. 대부분 프랑스인 출신의 교황들이었으니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에서 와인을 공수하기 보다는 가까운 지역에 새로운 포도밭을 만들어 와인을 마시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비뇽에서 론강을 건너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언덕 마을에 새롭게 생긴 교황이 마시는 전용 와인을 생산하던 마을이 ‘샤토 네프 뒤 파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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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지역을 대표하는 ‘샤토 네프 뒤 파프’(Chateau Neuf du Pape)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ateau)이라는 뜻이다. 아비뇽 교황청 자체도 로마 바티칸과 다른 새로운 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성은 아비뇽에서 두번째 탄생한 교황인 요한 22세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궁전이었다. 아비뇽 교황청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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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를 타고 ‘샤토 네프 뒤 파프’ 주차장을 찾아가니 반쯤 부서진 벽돌로 쌓인 거대한 문이 나온다. 폐허가 된 문을 차를 타고 통과하니 언덕 위에 넓은 포도밭이 나타난다. 저 멀리 론강 유역부터 360도의 평야지대가 보이는 전망이 탁월한 그림같은 포도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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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쯤 무너져 내린 샤토 네프 뒤 파프 성 앞에서 난 마리 조제 씨(오랑쥬-샤토네프뒤파프 관광사무소)는 손에 커다란 열쇠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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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고리 끝에 요철 문양의 키가 달린 고색창연한 열쇠다. “철커덩!” 그녀는 굳게 잠긴 성문 열쇠구멍에 이 열쇠를 넣어 문을 열었다. 14세기로 교황의 별장 안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자 와인잔이 놓여 있는 넓은 연회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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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조제 씨는 “이 성은 원래 4개의 탑과 연회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방이 있는 건물이었다”며 “교황이 여름에 이 성에 올 때는 100~200여 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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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점령군 사령부로 쓰다가 떠나면서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켰다. 그래서 북쪽 절반이 파괴된 채 텅빈 폐허로 남아 있다.
17세기에 그려진 샤토 네프 뒤 파프. 파괴되기 전 성의 온전한 모습이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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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원래 포도주를 생산하던 마을이었지만 요한 22세 교황이 새로운 성을 지으면서부터 인근 포도밭에 본격적으로 최고급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샤토 네프 뒤 파프 와인은 ‘교황의 와인’으로 알려졌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성에서 내려다본 론강 유역의 포도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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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의 포도밭을 걸어보니 밭에 감자만한 둥글둥글한 차돌이 가득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지중해로 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이곳에사 자갈 마당을 이뤄놓아 포도밭에도 온통 자갈 투성이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 포도밭에는 주먹만한 자갈들이 가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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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은 몽돌이 아니라 전남 해남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에서 볼 수 있는 공용알이나 타조알 만큼 큼직한 차돌이었다. ‘갈레 훌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이 돌들은 낮에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볕에서 받은 열기를 해가 지고 난 후 한밤까지도 유지하며,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샤토네프 뒤 파프는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특이한 토양이 개성이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와인의 깨끗하면서도 강렬한 맛의 비밀이 담긴 테루아(Terroir)인 셈이다.
갈레 훌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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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네프 뒤 파프는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시라 등 13가지 현지 토착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성 밑 마을의 중앙 광장 부근에 있는 ‘라 비나데아’(La ViNADEA)에서는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 페구(Domain du Pegau), 클로 생 장(Clos St. Jean) 등 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의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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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와이너리 중 하나인 도멘 페구의 이름은 교황 궁전 유적 발굴 중 발견된 와인용 항아리를 따서 만든 것이라 한다. ‘페구(Pegau)’는 14세기부터 내려온 테라코타 와인 저그(손잡이가 담긴 항아리)다. 샤토 네프 뒤 파프 와인에는 화이트도 있지만 95%가 레드 와인이며 로제는 만들지 않는다. 비나데아(VINADEA) 직원 엘자 씨는 “인근 타벨(Tavel) 지역에서 레드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로제 와인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샤토 네프 뒤 파프는 로제를 만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나데아(VINAD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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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네프 뒤 파프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전통있는 가문이 세대를 거쳐 생산하고 있다. 언덕 위 교황의 성채가 보이는 포도밭이 있는 ‘샤토 드 라 가르딘(Chateau de la Gardine)’도 그 중 하나다. 본래 교황청 소유였다가 몇 년째 주인 없던 포도밭을 가스통 브루넬이 1945년 구입하면서 라 가르딘의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는 그의 아들인 파트리크와 손자 기욤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샤토 라 가르딘의 와인 저장창고 앞에는 목조로 만든 교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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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이너리에는 방문객을 위해 품격있게 장식된 별도의 방에 시음장을 갖추고 있다. 이 곳에서 6종의 화이트와 레드와인을 맛을 보았다. 샤토 드라 가르딘의 와인병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다른 와인과는 다르다. 수제로 병을 만든 듯 병이 옆으로 살짝 눌리고, 병목도 약간 휘어진 비정형의 형태가 특이함을 자아낸다.
파트릭 브뤼넬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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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이너리의 초창기 선조들의 얼굴과 이름을 넣은 ‘제네라시옹 가스통 필립(Gaston Philippe)’은 수령 60년 이상의 나무에서 수확한 그르나슈와 시라, 무르베드르를 블렌딩해서 만든다고 한다. 2003년 빈티지는 보르도 와인처럼 바디감이 강하면서도, 부르고뉴 와인처럼 부드럽고 깨끗한 맛과 긴 여운이 인상적이었다.
기묭 브뤼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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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와이너리의 최고급 라벨 중에는 또 ‘임모텔(l’Immortelle)‘이라는 와인이 있다. Immortel은 프랑스어로 ’불멸‘이라는 뜻이다.
“임모텔은 최고급 포도를 엄선해서 수작업으로 만든다. 매해 나오지 않으며, 최상급 품질의 포도가 나온 해에만 생산한다. 기계나 펌프보다는 완전 핸드메이드로 만든다. 포도가 와인으로 숙성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인공적인 손길을 없애고, 포도 자체를 존중한다. 임모텔은 우리가 와인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욤 브루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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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텔의 병을 장식하는 라벨은 다른 와인과 달리 매우 특이한 그림으로 돼 있다. 와인 메이커인 파트릭 브루넬 씨의 친구인 한 예술가가 그려준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라벨을 선물해주었던 예술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와인의 이름은 영원한 친구를 기리는 마음에서 ‘불멸(L’Immortelle)‘로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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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에 보면 씨앗이 발아해서 꽃이 피고, 비가 오고 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처음 이 와이너리를 인수했을 때 들판에 가득 피어있던 꽃을 그린 그림입니다. 포도도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양조가 되는 것을 상징하는 라벨입니다.”
페름 드 생마르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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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강 유역 덩텔르 드 몽미라 지역의 쉬제트 마을의 ‘페름 드 생 마르탱(Ferme de Saint Martin)’은 요즘 프랑스를 휩쓸고 있는 새로운 내츄럴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다. 와인메이커인 소피 줄리앙 씨는 “오래 전부터 와인 제조과정에서 이산화황 등 화학물질을 전혀 넣지 않는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해왔다”며 “밭에서도 말을 이용해 물건을 옮기고, 염소가 잡초를 뜯어먹게 하는 농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대 로마의 도시, 오랑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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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네프 뒤 파프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랑주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다. 기원전 52년부터 로마제국의 현재 프랑스(갈리아)로 와서 점령한 이후로 약 400여 년 동안 로마가 직접 통치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프랑스인(골루아인)들에게 건축과 도로, 수로, 와인 담그는 기술 등 다양한 문명을 전수하며 융화정책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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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기원전 49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높이 18m, 폭 19m, 두께가 9m의 이 개선문은 세 개의 아치로 구성돼 있다. 앞 뒷면에는 카이사르의 전승을 기념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2000년이 훌쩍 넘은 오랑주 개선문은 아직도 당당하게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로마 황제의 전승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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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거리를 계속 걸어가 구시가지를 지나면,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이 나타난다. 현대식 건물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보존상태가 좋은 거대한 돌벽이 인상적이다. 이 고대극장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지어진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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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주변에는 로마에 있는 포룸처럼 사원과 회당 등의 건물 유적지가 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반원형 계단과 무대가 있는 거대한 극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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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 시는 1950년 중앙벽면의 움푹 들어간 곳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상을 다시 재건축함으로써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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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 넘은 요즘에도 공연이 벌어지는 살아 있는 극장이다. 매년 7~8월에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다. 1869년에 시작된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축제다.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의 전면에는 두께 1.8m의 거대한 벽면이 있어 영상을 쏘아 무대 효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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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공간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음향은 놀랄만큼 명료한 소리를 낸다. 비밀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무대 뒷편의 거대한 벽. 높이 38m, 가로 103m의 이 돌벽이 가수들의 노래를 효과적으로 반사시켜 객석 어디에서나 풍요한 음향을 즐길 수 있다.
동아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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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아를에서도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장이 투우 경기와 오페라, 콘서트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오랑주의 고대극장도 오페라 뿐 아니라 록음악, EDM 등 다양한 현대 음악축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삼 로마시대 건축의 위대함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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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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