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라면값 인하' 발언에 농림부 '밀가루값 인하' 압박
"체감 물가 낮춰 기대인플레 억제" vs "통화 정책 혼란 야기 등 부작용만"
2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라면을 구입하고 있다. 2023.6.2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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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값 인하' 발언에 이어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분업체들을 향해 밀가루값 인하를 압박하는 등 정부가 식품 업체들을 상대로 '가격과의 전쟁'에 나선 모습이다.
정부의 가격 잡기가 적절한 효과를 나타낼지는 아직 논쟁의 대상이다. 기업의 사회적 고통 분담과 소비 심리 안정 차원에서 타당한 정책 수단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불러올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28일 관계부처와 식품업계 등에 따르면 라면 업체인 농심(004370)은 자사 대표 라면(신라면)과 과자(새우깡) 품목 출고가를 7월 1일부터 각각 6.9%, 4.5%씩 내리기로 했다. 해당 라면 가격을 내리는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고, 과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농심의 이번 조치는 추 부총리 등 정부의 라면값 인하 압박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작년 9월 농심이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한 후 팔도와 오뚜기, 삼양식품 등 다른 업체들도 연이어 가격을 10% 내외 인상한 바 있다. 인상 명분은 당시 크게 오른 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었다.
다만 최근 국제 밀 가격이 떨어지면서 식품 업체들의 가격 인상 명분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추 부총리는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압박에 나섰다.
제분업계가 오는 7월부터 밀가루 출하 가격 인하를 검토하는 가운데 2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마트 관계자가 진열된 밀가루를 정리고 있다. 2023.6.27/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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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업체들은 추 부총리 발언 이후 국제 밀 가격과 다르게 국내 밀가루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곧이어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분업체와의 간담회에 나서 밀가루값 인하를 요구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정부가 업체를 상대로 가격 인하를 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업계가 주정(에탄올) 가격 인상을 이유로 대표적 서민 술인 소주 가격을 인상할 조짐을 보이자 추 부총리는 "소주 등 품목은 우리 국민들이 정말 가까이 즐기는 물품"이라며 "물가 안정은 당국의 노력과 정책도 중요하지만 각계 협조가 굉장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 물가가 조만간 2%대로 둔화할 가능성이 높지만, 정부가 여전히 특정 품목을 콕 집으며 가격 전쟁에 나서는 것은 서민의 장바구니 물가 체감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5월 3.3%였지만 식품 물가 상승률은 5.0%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라면이 포함된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7.3%로 집계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2배 수준이었다.
소주와 라면 등 서민의 대표 식품 가격을 낮추면 소비자 심리가 개선돼 기대인플레이션율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물가 상승 기대 심리가 높아지면 임금이 높아지고 결국 물가 안정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라면값이 내려간다는 인식이 생기면 소비자 심리도 안정돼 전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라면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도 "라면과 같은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 서민 체감 물가가 높아지기 쉬워 정부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라면과 소주 등 특정 품목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서 고물가 시기 기업들의 고통 분담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1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 물가 상승으로 여러번 수정된 가격 인상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3.2.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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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며, 언젠가 부작용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업이 정부의 관심이 느슨해진 틈을 타 추후에 가격을 인상할 수 있고, 이 경우 당국의 통화 정책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직접적인 가격 인상은 자제하더라도 동일한 가격에 제품 용량을 줄이는 눈속임인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대열에 동참할 수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유시장 경제에서 가격을 통제하더라도 기업들은 결국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언젠가 가격을 올릴 것"이라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물가가 요동치면 고금리는 지속되고, 결국 국민이 고통받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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