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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자율형 사립고와 교육계

선행학습 해야 풀 수 있는 자사고 내신 시험..."사교육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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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권 학생 모여 '변별력' 관건
"교육과정 벗어난 내신문제 다수"
교사 장기 근무에 학원도 "10년 분석"
한국일보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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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고 영어 내신 10년 경력을 기반으로 한 치의 실수도 허용치 않도록 지도하겠습니다.'

'OO고를 10년 이상 담당해온 OO고 전문가집단 학원.'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이름+내신'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입시 학원 광고들이 쏟아진다. 비슷한 실력의 학생들이 모여있는 자사고나 외국어고, 국제고의 경우 내신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만큼이나 '변별력'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학생과 학부모는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뿐 아니라, 내신 성적 위주의 수시 전형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내신 경쟁도 치열하다. 많은 자사고들이 내신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선행학습을 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학교 시험에 출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정부가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방침을 밝히면서 교육계에선 이들 학교에서 유발되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전국 단위 선발 자사고뿐 아니라 광역 지자체 단위 자사고의 내신 시험 문제도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 어렵게 출제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9년 서울 지역 22개 자사고 중 9개 학교의 1학년 1학기 수학 시험 문항을 조사한 결과, 9개 학교 모두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었다. 선행교육규제법은 교육과정에 앞서가거나 벗어나는 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일보

2018년 1학년 1학기 수학문제 중 선행학습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받은 문제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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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자사고의 1학년 1학기 시험에는 2학기 이후 교육과정의 개념을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됐다. 2009,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모두 1학년 2학기에 다뤄지는 '유리식과 무리식의 계산'에 관한 문제가 1학기 시험에 출제된 것이다. 2학년 수학Ⅰ 학습요소인 기호를 사용하고,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명시된 항등식의 성질을 활용한 문제도 출제됐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고난도 수학 문제집의 문항을 숫자까지 똑같이 출제한 문제도 있었다. 문제 제기 이후 서울시교육청이 조사에 나섰고, 자사고 3곳이 선행교육규제법을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킬러문항' 수험서인 포카칩N제 저자 문호진씨는 "자사고의 내신 문제들을 보면 사교육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갖고 오는 형태로 출제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면에서 수능보다 더 교육과정에서 벗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지역 고교 학부모 A씨는 "자사고나 소위 강남 명문고로 불리는 학교들은 수시 전형으로 서울대에 갈 학생을 밀어주는 전략을 쓰는데,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수능 킬러문항 못지않은 문제들이 출제된다"며 "학교 인근 학원들은 내신 족보 등을 제공하니 결국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학원들은 수년간의 자사고 내신 출제 내역을 분석해 모의고사까지 제공한다.

여기에 고교 입학을 위한 사교육비 지출까지 고려하면 정부의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방침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정책 과제와 상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는 학생 선발권을 갖고 있어 입학전형을 준비하기 위한 사교육과 이후 상위권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선행 사교육을 유발하고 있다"며 "모순된 정책 발표"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2022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69만6,000원으로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1.7배였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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