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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이슈 넷플릭스 세상 속으로

"넷플릭스·SUV도 연극의 경쟁자 될 수 있다…새 정체성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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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서울시극단장 인터뷰

"격변의 시대, 연극의 본질에 대한 고민 다시 해"

23일 개막 연극 '겟팅아웃', 연극성 회복·연민에 대한 고민 담아

“격변하는 시대에 연극이라는 아날로그적 문화를 지키려면 어떤 매력을 유지해야 할까, 변별력과 경쟁력으로서의 연극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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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서울시극단장. [사진제공 =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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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알려진 ‘스타 연출가’ 고선웅(55)의 서울시극단행에 연극계와 관객들은 큰 기대감을 내비쳐왔다.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 '홍도', '칼로 막베스', 뮤지컬 '광주', 근작 '회란기' 까지 연극과 창극, 뮤지컬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친 그가 서울시극단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가 궁금해서다. 그는 “그동안엔 나와 우리 극단의 작품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공연계 전반에서 연극 본연의 가치를 잃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연극이 갖는 재미와 행복, 만족이 사라지는 것에서 위기의식을 느꼈다”며 “서울시극단은 제반 비용 전액을 시민의 세비로 지원받는 단체인데 안정적 재원과 무대가 있으니 보다 시민의 문화의식 함양을 위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격변의 시대, 연극의 본질에 대한 고민 다시 해"
서울시극단에서 그가 처음 연출을 맡은 연극 ‘겟팅아웃’은 미국 극작가 마샤 노먼이 1977년 발표한 첫 희곡으로 8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알리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 전개되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캐릭터’를 꼽았다. “겟팅아웃은 1970년대 희곡이지만 지금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 의식과 연극적 재미에 충실한 작품인데 연극의 매력, 다시 캐릭터로 돌아가서 그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문제를 돌파하고, 또 견디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살아가는 근거를 마련하는지를 보면서 관객이 연극이 원래 가진 매력을 다시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겟팅아웃’의 주인공 알리는 출소 후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짐을 풀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유년 시절 집 안과 밖, 교도소에서까지 끔찍한 폭력을 겪으며 비행 청소년으로 살았던 그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잊으려 이름도 ‘알리’에서 ‘알린’으로 바꿨다. 교도소에서 배운 기술로 일자리도 구하고, 남의 손에 맡겨진 아들을 데려와 키우고 싶어 하지만 알린은 출소 첫날부터 가혹한 현실을 마주한다. 가장 힘이 되어야 할 엄마는 딸에 대한 불신과 독설로 새 삶에 대한 의지를 꺾고, 주변인들 역시 알린이 잊고 싶어 하는 과거를 언급하며 그를 괴롭힌다. 포주였던 남자친구는 복역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탈옥해 알린 앞에 나타나 다시 매춘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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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겟팅아웃' 연습실 공개 현장에서 이경미(알린 역), 유유진(알리 역)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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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끔찍한 알린의 하루에 주목한 고 단장은 “죗값을 다 치른 알리라는 여자가 다시 세상에 나와 관계도 맺고 인생의 보람도 찾아야 하는데 가석방 당일, 이 하루 동안의 상황은 막막해 보이기만 한다”며 “잊고 싶어하는 과거가 알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안타깝고. 그를 좋은 마음으로 포옹하고 싶어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연극 '겟팅아웃', 연극성 회복·연민에 대한 고민 담아
고 단장이 짚었듯 연극은 아날로그적 문화를 대표하는 장르다. 코로나19 이후 매체는 격변을 거듭하고 있고 연극은 늘 그랬지만 다시 한번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연극의 경쟁자(?)는 넷플릭스가 될 수도, SUV 차량이 될 수도 있다”며 “여가 선용의 선택지가 넓고 다양해진 만큼 이제는 연극의 적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고 오히려 연극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연극을 봐야 하는 이유를 2023년의 관객이 납득하게 하는 것이 제가 맡은 역할이자 지금 이 시대에 연극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캐릭터만큼이나 고 단장의 천평에서 관객의 반응은 무겁고 중요하다. “나무 심는 사람이라는 책을 참 좋아한다. 그냥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씩 심는데 숲이 될 수 있듯 연극도 한 작품, 한 작품 좋은 작품을 만들다 보면 저변확대가 되지 않을까 낙관한다. AI나 OTT나 세상은 격변하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느끼며 살고, 비물질문화가 물질문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충격을 겪는 사람, 우울증이나 폭력적 성향을 숨기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그 정서를 순화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는 장르로 연극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우는. 그래서 사람이 연극을 만들고, 연극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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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서울시극단장. [사진제공 =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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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준비하면서 고 단장은 ‘연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는 2023년에 어떻게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했을까 납득하기 힘들었다고도 했다. 그는 “푸틴이 전쟁을 선언하고 나서면 기계 버튼만 눌러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총 들고 전장에 나서는 지상군, 공중전에 투입되는 병력 모두 다 20대 청년들인데, 이 사람들은 가족이 있고 애인이 있고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구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전장에서 죽거나 죽이거나 해야 하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내 자식의 이야기라면, 이라고 한 번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쉽게 간단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겟팅아웃도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을 용서하자, 범죄를 옹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선한 의지로 갱생하고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구원하고 구제하는 것이 맞지 않나를 묻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지금 세상은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자비 없는 세상이 아닐까” 고 단장의 물음은 인간성의 회복, 누군가에겐 간절한 관대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좋은 연극’을 하고 싶다는 그는 “관객에게 서울시극단의 연극은 두 시간을 투자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며 “조씨고아 대사 중에 인생은 한바탕의 짧은 꿈이고 북소리, 피리 소리 맞춰 놀다 보면 어느새 금방인 꿈이구나…. 하는 구절이 있어요. 연극은 play, 저도 그렇지만 관객들도 한바탕 꿈, 잘 놀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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