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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한국 차세대발사체 엔진, 스페이스X 팔콘9 멀린보다 뛰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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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세계의 우주발사체 경쟁



중앙일보

추력100t의 차세대 대형 우주 발사체 엔진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에 착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최창호(왼쪽) 박순영 박사가 지난 1일 대전 항우연 본원에서 본지와 만났다. 왼쪽이 터보펌프 전문가인 최창호 박사, 오른쪽은 엔진체계 전문가인 박순영 박사.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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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명나라 지방 관리였던 완후(萬戶)는 평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우주여행을 꿈꿨다. 고심 끝에 47개의 화약통을 붙인 ‘의자로켓’을 만들었다. 그는 의관을 정제하고 의자에 몸을 묶었다. 그리곤 하인들을 시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일었다. 마당을 뒤덮은 연기가 사라진 뒤, 그 자리엔 완후도 의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완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유인 로켓 이야기다. 완후가 실제 인물이라면, 서구에서도 일찍이 비슷한 상상을 한 사람이 있다. 과학소설(SF) 분야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1828~1905)이다. 그는 1865년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소설을 통해 대포에 사람을 태워 달로 보내는 ‘대포클럽’의 얘기를 과학적으로 그려냈다. 이 땅에선 고종 2년, 그의 아버지 대원군이 섭정하던 초기다. 대포클럽은 길이가 270m에 달하는 대포를 만들고, 포탄 앞에 사람 3명과 개 1마리를 실어 달을 향해 발사했다. 포탄은 지구 중력권을 탈출하기 위한 속도인 초속 11.2㎞로 날아올라 달까지 간 뒤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포탄이 지구로 돌아올 때는 바다에 착륙했다. 실제로 100여 년 뒤인 1969년 미국 새턴V 로켓에 실린 아폴로 유인 우주선이 달에 갔다 돌아올 때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지는 방식을 이용했다. SF작가의 상상이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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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설에 나오는 16세기 명나라 지방관리 완후. 화약통을 이용해 '의자로켓'을 만들어 발사한 인물로 알려졌다. [사진 마샬우주비행센터]





우주로켓의 원조, 독일의 V2 로켓



오늘날 우주로켓의 원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을 공습한 독일의 V2로켓이다. 독일의 2차대전 패망은 로켓기술이 미국과 소련으로 퍼져가는 계기가 됐다. 전쟁에 승리한 미국은 발 빠르게 V2로켓의 개발 책임자였던 폰 브라운(1912~1977)과 동료들을 영입했다. 소련도 한 발 늦었지만, 숨어있던 V2로켓 개발 기술자 다수를 데려갔다. 앞서 미국과 소련에는 각각 로버트 고다드(1882~1945)와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라는 걸출한 공학자가 있었지만, V2로켓을 만들어본 폰 브라운과 기술자들이 미국ㆍ소련 양국의 우주로켓 개발에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설 속 완후가 의자로켓을 타고 우주로 사라진지 500년, V2로켓이 런던을 공습한지 반세기가 훌쩍 지난 21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우주선은 이미 태양계를 벗어날 정도로 진화했다. 미국은 달을 넘어 화성까지 갈 수 있는 유인 우주발사체까지 만들고 있다.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는 공산권 붕괴의 홍역을 거치면서, 세계 최강 로켓기술을 자의 반 타의 반 세계 곳곳으로 퍼뜨리고 있다. 그 속엔 우리나라도 있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나로호(2013년)를 쏘아올렸던 한국은 지난달 25일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 3차 발사를 통해 550㎞ 지구궤도에 처음으로 실용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 ‘세계 7대 우주강국’ ‘스페이스 클럽’(Space Club)의 자리를 굳히는 순간이었다. 이젠 저궤도가 아닌 38만㎞ 너머 달까지 갈수 있는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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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페네뮌데역사기술박물관 외부에 전시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V2로켓. [사진 페네뮌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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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에 나설 한국 차세대발사체



지난 1일 누리호의 주역인 대전 어은동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을 찾았다. ‘추진공급계 및 터보펌프 대형상사 시험동’이라는 긴 이름을 단 건물 3층에서 최창호(54)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 3차원의 복잡한 기계장치 이미지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시뮬레이션에 몰두하고 있었다. 차세대발사체의 주엔진이 될 100t 추력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의 핵심 부품인 터보펌프였다. 최 책임연구원은 “기존 누리호 75t 엔진( KRE-075 )의 연료펌프 출구압이 110기압이라면, 100t 엔진은 최대 480기압에 달한다”며 “펌프가 높은 압력에 견디도록 설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발사체는 올해부터 2032년까지 총 10년의 사업기간 동안 2조 132억4000만원의 국비가 투여되는 거대 우주개발 프로젝트다. 개발이 완료되면 2030년 1차 발사 때 달 궤도에 투입되는 성능 검증 위성을 실어보내고, 2031년과 2032년 2,3차 발사 때엔 달착륙선 발사를 수행하게 된다. 3단형인 누리호와 달리 차세대발사체는 2단형으로 구성된다. 1단에 100t 엔진 5기를, 2단에 10t엔진 2기를 달아, 총추력이 500t에 달한다. 단수는 적지만 성능은 3.3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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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를 이를 차세대발사체용 10t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터포펌프를 제외한 연소기등을 모두 민간기업 비즈로넥스텍에서 제작했다. 아직 노즐 확장부를 달지 않은 상태다. [사진 비츠로넥스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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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와는 차원이 다른 차세대발사체



차세대발사체사업은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100t 로켓엔진 개발은 지난해부터 150억원 규모의 ‘스페이스 챌린지 사업’으로 먼저 시작했다. 일종의 선행연구다. 연소기와 터보펌프 등 핵심구성품 설계와 제작을 통해 100t 엔진을 실제로 개발할 수 있는지 연구해보는 것이다. 이르면 올 연말에 실물이 제작 완료돼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2단에 올라갈 10t 엔진은 기관고유사업으로 이미 진행해왔다. 지난 2월엔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터보펌프 성능 검증 시험과정에서 폭발하는 사고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연구장비 제조 전문업체인 비츠로넥스텍에서 엔진시험에 사용될 시제품을 조립해 놓은 상태다.

항우연 연구원들은 차세대발사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최창호 책임연구원은 “차세대 100t엔진은 효율이 뛰어난 다단연소사이클 방식이라 가스발생기를 단 누리호 75t엔진과 차원이 다르다”며 “차세대발사체에 장착될 100t엔진의 목표성능은 미국 스페이스X의 상용발사체인 팔콘9에 들어가는 멀린엔진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 장정로켓에 들어가는 yf100엔진 선행연구만 10년을 했다”며 “우리 차세대발사체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평가위원들조차도 목표가 너무 높아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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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우주개발국(NADA)이 주도하는 북한 우주개발



한국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어쩌다 북한과 경쟁이 돼버렸다. 지난달 31일 아침, 북한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렸다.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형’을 실은 3단형 우주로켓 ‘천리마-1형’이었다. 1단 추진체에 옛 소련의 RD-250엔진을 개량한 ‘백두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1개의 터보펌프에 2개의 노즐이 달려있으며, 추력은 80t으로, 누리호 엔진(75t)보다 높다. 이 발사체는 백령도 서쪽 먼바다 상공을 통과했지만, 낙하예고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군산 어청도 서방 200㎞ 해상에 떨어졌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즉각 “신형위성운반로케트의 2계단 발동기가 추진력을 상실해 추락했다”며 실패 사실을 인정했다.

북한은 2013년 ‘국가우주개발국’(NADA)을 설립했다.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 개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009년부터 외부에 알려진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의 후신이다. 아직까지 ‘우주항공청’ 발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국가우주개발국은 2016년 2월 광명성호를 발사해 인공위성을 목표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간의 핵무기 개발을 이유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이 돼, 우주발사체 개발이 금지돼있다. 언제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북한의 우주발사체 기술력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로켓개발의 시작은 북한이 우리보다 앞섰지만, 지금까지 발사체 시스템 차원의 종합적 기술력으로 보면 우리가 더 뛰어나다”며 “다만 기술 외적인 면에서 개발의지를 보자면 거의 집착 수준으로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영근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미사일센터장(전 항공대 교수)은 “북한은 1980년대 스커드미사일 때부터 액체연료 기반 로켓엔진을 개발해왔다”며“로켓엔진과 연료탱크 등 추진체 측면에서만 보자면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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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의 최신 우주발사체 스타십이 텍사스 해변 발사장에 서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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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강 발사체, 스페이스X의 스타십



우주발사체와 그 핵심이 되는 로켓엔진 개발에서 현존 세계 최고는 미국이다. 특히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스타십과 여기에 들어가는 랩터엔진은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존재로 평가받는다. 발사체의 크기도 역대 최대다. 1,2단을 합친 총길이는 120m, 직경은 9m에 달한다. 아폴로 달탐사에 쓴 새턴V 발사체가 전장 110m로, 그간 역사상 최대였다. 다만, 스타십은 아직까지 개발에 최종 성공하진 못했다. 스페이스X는 지난 4월20일 부스터를 단 2단형 스타십을 첫 시험발사했지만, 이륙 4분여 만에 폭발했다. 랩터 엔진은 한국이 개발하려고 하는 차세대발사체용 로켓엔진처럼 효율이 뛰어난 다단연소방식이다. 극저온 메탄엔진과 액체산소를 사용한다. 스타십의 1단인 슈퍼헤비 부스터에는 33개, 2단에는 6개의 랩터엔진이 들어간다. 1,2단 모두 재사용 가능한 방식이다. 추력은 7500t에 달하며 최대 150t의 화물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 팔콘9은 22.8t, 한국 누리호는 1.5t을 실을 수 있다. 스페이스X는 스타십을 이용해 달은 물론 화성까지 유인탐사를 할 계획이다.

스타십이 아직 상용화하지 못한 세계 최고라면, 러시아의 앙가라는 이미 상용화한 세계 우주발사체 중 가장 뛰어나다. 러시아 우주기업 흐르니체프가 개발한 앙가라에는 다단연소사이클의 RD-191 엔진이 들어있다. 1개 엔진의 추력이 최대 210t으로, 단일엔진으로만 비교하면 스페이스X의 랩터(200t)보다 앞선다. 2013년 발사에 성공한 첫번째 한국형발사체 나로호의 1단으로 쓰인게 바로 앙가라다.

박순영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러시아는 그간 RD-191로 지상 최고 성능의 로켓엔진을 보유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미국 스페이스X처럼 경제성이 뛰어난 재사용이 가능한 엔진과 이를 이용한 아무르(Amur)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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