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그룹, 음악·노래·댄스 수준 높아"
"정치와 문화는 별개" 역사 문제 무관심
일부 과거사 문제까지 관심 확장하기도
편집자주
한일 문화 교류의 새 장이 열리고 있다. '역사는 역사, 문화는 문화'로 분별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보더리스 세대'가 주역이다. 당당하게 서로의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양국의 문화 교류 현상을 짚는다.토요일인 3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의 골목에 있는 한국 화장품 매장이 많은 손님으로 꽉 차 있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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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안 좋을 때는 한국이나 한국 대통령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TV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제가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걸 숨기려고 한 적은 없어요.”
한국 문화에 빠진 일본 청년들은 당당했다. "좋으면 그저 좋아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올해 들어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데 대해서도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좋은 일”이라고만 했다. 문화와 역사, 정치는 별개라는 게 그들의 소신처럼 보였다.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일본 청년들의 속마음을 들어 보기 위해 대학 2학년인 오누키 르네(20)와 모리키 리사(20), 4학년인 구리시마 유타(22)와 나카모토 가나코(21)를 최근 도쿄에서 각각 만나 인터뷰했다. 구리시마는 한국 사극의 팬이고, 나머지 3명은 K팝을 가장 좋아하는 장르로 꼽았다.
“K팝이 가장 좋아” 한국어 독학으로 배워
일본에서 K팝의 인기가 뜨거운 건 "음악, 춤, 가창력, 비주얼 등 모든 면에서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K팝을 접했다는 이들은 가사를 이해하고 따라 부르기 위해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할 정도로 '진심'이다. K팝 아이돌의 패션, 화장,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는 건 기본이다. 댄스 동아리에 가입해 커버 댄스도 즐긴다.
K팝 사랑은 어느새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커졌다. 삼겹살, 주꾸미 볶음 같은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과 한국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려 애쓴다. 한국어도 능숙해질 때까지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한국 대중문화에 빠진 일본 여성들이 거치는 '코스'다.
K팝 커버댄스 동아리 운영진을 하고 있는 대학 2학년인 오누키 르네. 도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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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키는 중학생 때 그룹 ‘모모랜드’를 통해 K팝을 처음 제대로 접했다. “모모랜드가 일본에 오면 언어의 장벽 없이 터놓고 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어를 공부했다. 반짝 사랑이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해 한국 문화 동아리인 ‘코리아 클럽’ 지부장을 맡았다.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행사에도 종종 참가한다. 최근엔 왕실 다과회 체험을 했다. 오는 8월엔 2주 동안 서울에서 어학 연수를 할 예정이다.
모리키도 중학생 때부터 K팝에 빠졌다. 유튜브에서 K팝 동영상을 우연히 보고 난 뒤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해 공부했고, 고교 2학년 때 서울에서 2개월 동안 어학연수도 받았다. 그의 삶에선 어느새 한국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경희대 출신 유학생에게 아키하바라를 한국어로 안내했던 때가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카모토는 ‘소녀시대’, ‘카라’가 일본에서 활약하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K팝을 좋아했다. 요즘은 대학 K팝 커버댄스 동아리를 이끈다. 지난해 1년간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덕분에 한국어가 유창하다. 구직 활동 중인 그는 기회가 되면 한국 기업의 일본 법인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문화뿐 아니라 한일 역사 문제에도 관심이 있는 대학 4학년생 나카모토 가나코. 도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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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겨울연가’ 봤어요”... 대대로 한류
이들의 한국 문화 사랑은 대물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대중문화 팬인 가족 덕에 어릴 때부터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다. 오누키와 나카모토의 어머니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팬이었고,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찾아 본다. 오누키는 “8월 서울로 연수를 갈 때 어머니가 함께 가시겠다며 요즘 집에서 한국어 책을 펴놓고 공부하신다”고 했다.
구리시마의 가족도 모두 한국 문화의 팬이다. 그가 어릴 때 거의 매년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역사 마니아인 그는 초등학교 때 ‘주몽’을 보고 한국 사극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는 “일본 사극은 에도 시대 사무라이를 주로 다루는 데 반해 한국 사극은 건국 이야기가 많아서 흥미진진하다"며 ‘용의 눈물’, ‘대조영’, ‘왕건’ 등을 사례로 꼽았다. 그는 '대장금', '이산', '허준' 등을 연출한 '사극 장인' 이병훈 PD의 작품을 거의 모두 녹화해 소장하고 있다.
한국 역사 드라마를 좋아하는 대학 4학년생 구리시마 유타. 도쿄=최진주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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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제 “무관심” vs “관심 가져야”
일본 청년들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일관계나 역사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는 데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일본 청년들은 정치·사회 문제에 대체로 거리를 둔다. 그런 성향 때문에 한일관계의 부침에 휘둘리지 않고 한국 문화를 솔직하게 즐기는 측면도 있다. 모리키는 “몇 년 전 한일관계가 전후 최악이라고 했을 때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카모토는 다른 경우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 역사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알고 있다면서 “분명히 일어난 일인데 (일부 일본인들이) 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려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K팝을 좋아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며 “문화만이 아니라 정치도 제대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리시마도 사극 마니아답게 과거사 문제를 고민한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내가 받은 역사 교육 내용 중에 가해의 역사는 없었다”며 “대부분 일본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제노사이드(인종·민족 집단학살)”라면서 “내가 사는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구리시마는 “한일관계를 위해선 상대방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교과서나 미디어의 정보를 그냥 수용하지 말고, 실제로 상대방 국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스스로 알아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다”며 “같은 처지끼리 동아시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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