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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대로 놔두지 말자” 드라마 대사가 촉발한 대만 ‘미투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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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당 내부 고발 잇달아 책임자 줄사퇴…차이 총통 사과
국민당 의원들도 도마에…학계·문화계 등에 확산 움직임

경향신문

대만 ‘미투’의 도화선이 된 전 민진당 당원의 페이스북 게시물.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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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놔두지 말자.”

대만 정계에서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터져나왔다. 내년 1월 총통 선거를 앞두고 집권 민진당은 내부에서 불거진 폭로로 위기에 처했으며, 야당 국민당도 도마에 올랐다. 대만판 ‘미투’는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대만의 넷플릭스 정치 드라마 <인선지인: 웨이브 메이커스>가 ‘미투’ 쓰나미를 낳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처음 방영된 이 드라마는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자의 캠프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드라마 내용 중 한 직원이 동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는데, 이를 접한 당 대변인이 당에 미칠 타격을 감수하더라도 “이대로 놔두지 말자”고 말한다.

이 대사는 대만에서 ‘미투’ 운동의 구호가 됐다. 지난달 31일 전 민진당 당원 A씨는 페이스북에 “지난해 당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여성부(성평등부) 주임에게 신고했으나, 여성 인권운동가 출신인 주임으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2차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해당 주임이 자신에게 “왜 (그 당시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고 불평했다고 밝혔다. 그의 페이스북 게시물은 “이대로 놔두지 말자”란 대사로 시작했으며, <웨이브 메이커스>의 스크린샷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정치권에서 ‘미투’ 고발이 이어졌다. 민진당 청년부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당원도 동료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청년부 주임에게 보고했으나, 오히려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부당한 대우와 따돌림을 당해 결국 그만뒀다고 폭로했다. 국민당 소속 푸쿤치 의원 역시 2014년 한 여성 기자의 손을 잡고 키스한 혐의로 고발됐다. 적어도 15명의 여성과 남성이 고위 정치인의 성폭력 또는 성폭력에 대한 부적절한 처리 문제를 폭로했으며, 이 중 7명은 민진당 당원이라고 타이완뉴스는 전했다.

그간 성평등과 젠더 이슈를 중시해 온 민진당은 큰 타격을 입었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총통의 수석보좌관을 비롯해 당내 관련자와 책임자의 줄사퇴가 이어졌다. 차기 총통 후보 라이칭더 부총통 역시 “당내에서 어떠한 괴롭힘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공식 조사를 제안했다. 민진당은 성폭력 신고 접수 창구 개설, 성희롱 사건에 무관용 원칙 대응, 개혁안 등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사태가 잦아들지 않자 차이잉원 총통은 일주일 사이 두 차례 직접 사과했다. 차이 총통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총통이자 전 민진당 대표로서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미투’ 물결은 정치권을 넘어 학계, 문화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웨이브 메이커스>의 작가 치엔리잉 또한 자신이 동종 업계 선배에게 성추행당한 경험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는 “내 경험이 많은 젊은 여성과 남성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톈안먼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왕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으며, 왕단은 이를 부인했다. WP는 “이 드라마와 첫 번째 (폭로) 페이스북 게시물은 정치에 관한 것이었지만, 대만 국민들은 교수, 의사, 감독, 야구 심판 등에게 성적 피해를 당한 경험으로 나아갔다”고 전했다.

대만은 국회의원 42%가 여성일 정도로 성평등 면에선 진보적이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이 편견을 우려해 신고를 꺼리는 등 보수적 문화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웨이브 메이커스>가 뜻밖의 연쇄 작용을 낳은 것이다. 천메이화 국립중산대 교수는 “<웨이브 메이커스> 덕에 대만에서 ‘미투’ 운동의 첫 번째 물결을 보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이런 ‘미투’ 운동이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통 선거에서 어떠한 변수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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