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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아침을 열며] ‘덜 나쁜 놈’ 고르는 선거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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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대 7. 5월 셋째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중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다. 여야 지지층 간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 비율 차이가 76%포인트나 된다는 의미다. 정치 양극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 정치가 늘 그랬지라며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갤럽 조사 기준 여야 지지층 간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 비율 차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역대 정부의 최대 격차를 보면 김영삼 정부 39%포인트, 김대중 정부 48%포인트, 노무현 정부 62%포인트, 이명박 정부 64%포인트, 박근혜 정부 75%포인트, 문재인 정부 85%포인트를 기록했다. 한때 지지 정당이 다른 이들 사이에서도 국정운영과 관련해 공론이 모이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경향신문

박영환 정치부장


양당제에 가까운 한국 정치에서 양극화 심화의 폐해는 명백하다. 타협은 사라졌고 입법은 교착됐다. 양곡법, 방송법 등 입장이 갈리는 법안에 대해 여당은 합의를 요구하며 무작정 저지했고, 민주당은 수적 우위를 앞세우며 무작정 표결로 맞섰다. 민주당은 여당이 반대해도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입법을 무산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타협이 사라진 자리는 배제의 정치가 차지했다. 국정운영에서 야당은 더 이상 파트너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집권 1년이 넘도록 제1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정책의 당파적 편향성은 심화됐다. ‘ABM’(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아니면 다 된다)은 현 정부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특히 상대방을 악마화해 반사이익을 노리는 혐오정치가 극성을 부린다. 내가 못해도 상대방이 더 못하면 된다는 식이다. 여권은 안전사고도 전세사기도 모두 전 정권 탓만 한다. 그러면서 ‘이재명 리스크’를 안전핀으로 여기는 듯하다. 검찰은 대선 1년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 수사를 끌면서 도덕성 흠집 내기에 집중한다. 야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관련 질문에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냐. 모르냐”고 되묻는다. ‘국민의힘은 깨끗하냐’는 식이다.

이런 거대 양당 중심 혐오정치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선거제도 개편이다. 양당 기득권 유지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현행 단순다수대표제는 한국 정치사에서 수명을 다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표만 더 받아도 의석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정당 득표와 의석수 간의 불일치는 심해진다. 국회의원 절대다수가 고학력, 고소득, 고연령 남성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는 어렵다. 선거제를 고쳐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해야 제3당과 소수정당을 활성화할 수 있고, 의원 구성의 다양성도 개선할 수 있다. 개편안과 관련해서는 지난 5월 KBS가 실시한 선거제도 개편 공론조사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시민 469명의 입장은 전문가들과 학습·토론을 거친 후 크게 달라졌다.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운영하되 그 비율을 줄이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은 늘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것도 용인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문제는 선거제 개편도 거대 양당의 손에 달린 현실이다. 여야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결의안을 도출하고 국회의원 전원위원회까지 개최하며 선거제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듯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감축, 의원 정수 축소 등 개편 취지와 정반대의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논의는 전원위 이후 두 달 가까이 공전하고 있다. 개편 논의를 주도할 리더십도, 개편을 강제할 외부의 압력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 문제가 됐던 위성정당 출현만 막아도 성공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 와중에 정치권은 내년 4월10일 총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수의 유권자는 또 한 번 힘든 선택을 해야 한다. 거대 양당 중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은 약 30%의 무당층은 특히 힘들다. “정치란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로 나쁜 놈이 다 해 먹는다.”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또다시 ‘제일 나쁜 놈’을 가리고 ‘덜 나쁜 놈’에게 주고 싶지 않은 한 표를 줘야 할까. 그걸 믿고 거대 양당은 덜 나쁜 놈 되기 경쟁만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똘똘한 제3당, 키워주고 싶은 소수당에 기꺼이 준 한 표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박영환 정치부장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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