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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대법 “위안부 합의 문서 비공개 정당”…피해자 ‘알 권리’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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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로 얻은 이익, 공개 이익보다 커”…외교 국익에 무게
2045년 공개 결정…고령 피해자들 ‘합의 전모’ 알 길 사라져
소송 낸 송기호 변호사 “사법부가 ‘인권 보장’ 책무 저버려”

외교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한 문서를 비공개한 조치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송을 제기한 지 7년4개월 만에 정보공개를 둘러싼 다툼은 일단락됐으나 고령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합의의 전모를 확인할 길은 사라졌다.

경향신문

일 외교청서 들고 외교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한 문서를 비공개한 조치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1일 송기호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일 송기호 변호사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과정에서 논의한 내용을 담은 문건 일부를 공개하라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일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양국 외교장관이 발표한 합의에는 일본 정부 측 법적 책임을 명확히 짚은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합의 발표 직후 열린 참의원 회의에서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송 변호사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합의를 발표하기까지 양국이 협의를 거치는 동안 일본 측이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등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라는 취지였다. 외교부가 이를 거부하자 송 변호사는 2016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알 권리’ ‘외교 국익’ 엇갈린 1·2심

1심은 문서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며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문서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보호되는 국익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피해자 개인들로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인간의 존엄성 침해, 신체 자유의 박탈이었고, 국민의 일원인 피해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에 책임감을 갖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2·28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그 합의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됐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경향신문

당시, 합의 설명에 항의하는 피해자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2015년 12월29일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아온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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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송 변호사가 청구한 정보가 외교관계 등에 관한 것이라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문서가 공개되면 일본과 외교적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을 수 있고, 향후 다른 나라와 조약이나 협정을 체결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1심이 ‘피해자와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했다면 2심에선 ‘외교상 국익’ 쪽으로 추가 기운 것이다.

2심 판결은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판결에 앞서 피해자 중 한 명인 길원옥 할머니는 재판부에 “일본이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이 알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린다”는 호소문을 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완전히 배제된 ‘피해자들 알 권리’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일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알 권리는 완전히 배제됐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으로, 2017년 1심 승소 때만 해도 40명이던 피해 생존자는 다수가 고령으로 사망하면서 올 5월 기준 9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94.4세이다.

외교부는 문서가 생성된 지 30년 후 해당 문서를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미 고령인 피해자들이 지금으로부터 22년 후인 2045년 문서 내용을 확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송 변호사는 “대법원이 피해자 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렸다”고 했다. 그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서도 일본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다”면서 “단지 외교 관계라고 해서 사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면 국민 인권 보호에 직결되는 외교가 법치, 알 권리, 투명성 원칙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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