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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부산 전세사기 1호 '오피왕'…"월셋방 배달기사" 첫 재판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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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전세사기 '1호 사건'이 발생한 동래구 소재 오피스텔 벽면에 피해자들의 벽보가 붙어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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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2시 부산지법 353호 법정. 부산 시내 곳곳에 소유한 오피스텔 세입자 62명에게 64억원 상당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사기)로 구속기소 된 피고인 A씨(30대) 첫 재판이 열렸다. A씨 사건은 부산에서 터진 전세사기 ‘1호 사건’이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부산 오피(스텔)왕’으로 불린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은 명의만 빌려줬을 뿐 임대차 계약 등 (전세사기) 범행과 관련된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사기 고의성이 없고, 다른 사건 관계자들과 범행을 공모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베일 가린 ‘오피왕’ 얼굴,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방청석 앞줄에 앉은 피해자들은 초조한 모습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피해자 중 한명인 20대 여성 B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직장인인 그는 이날 어렵게 시간을 내 법원을 찾았다고 한다. B씨는 “A씨 얼굴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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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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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씨가 A씨 법인 소유 부산 동래구 오피스텔에 입주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직장과 가까운 역세권에 신축 건물이라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2년간의 전세계약 보증금은 1억원이었다. B씨는 8000만원을 중소기업청년 전세자금 대출로 마련했다. 등기부 등본에 수십억원대 은행 근저당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법인 소유 건물에서 이 정도 근저당은 일반적”이라는 공인중개사 설명을 믿었다. 정작 계약 땐 A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A씨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계약 대리인들도 “대표(A씨)가 수백억원대 자산가다” “사업이 잘되고 있으니 (보증금) 걱정할 필요 없다”며 부추겼다고 한다. 이들은 사실상 ‘바람잡이’였다.

30여세대 규모인 동래구 오피스텔 세입자는 대부분 2030 청년들이다. B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6~11월 입주했다. 세입자들이 모르는 새 A씨도, 계약 대리인들도 종적을 감췄다. 갑자기 관리비가 치솟은 이유를 알아보던 B씨가 ‘잠적 사실’을 눈치채고 다른 세입자에게 알렸다. 이 시기를 전후해 전국 오피스텔과 빌라 수백채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잠적했던 A씨는 지난달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A씨가 본인 혹은 법인 명의로 소유한 오피스텔은 160여채, 전체 피해액은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피왕 "명의 이용 당해 직업은 배달기사" 주장



이날 재판에서 A씨 측은 일관되게 “(주범들로부터) 명의를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명목상 법인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그는 직업을 묻는 말엔 “배달대행 기사였다”고 답했다. 거주지는 원룸 월셋방이었다.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정순열 판사는 “다음 공판에서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을 가장 먼저 증인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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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정부차원의 전세사기ㆍ깡통전세 추가대책 마련 및 대통령 면담 재차 촉구 기자회견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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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A씨가 실제 ‘바지사장’이더라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씨는 이 재판이 열리기 전 서울과 경기·인천·대구·전남 여수 등지 전세사기 피해자 143명이 동의한 탄원서를 법원에 냈다. 탄원에 동의한 이들 중 대다수가 A씨의 직접 피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A씨를 엄벌해 전세사기 악순환을 끊어달라는 탄원에 뜻을 모았다.







전세사기 피해 이후 삶 무너져



취재진이 탄원한 이유를 묻자 B씨는 “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 후 B씨 삶은 무너졌다. 평생 모은 돈에 빚을 얹어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떼일 처지인데 ‘피해자 인정’은 받지 못했다. 오피스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지만, 아직 낙찰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전세기간도 끝나지 않아서다. 하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도 헤어졌다. 이 무렵 비슷한 처지에 있던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이어지자 B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는 “‘피해를 봤을 뿐 죄인은 아니다. 꺾이지 말고 살아남아 진짜 죄인들에게 죗값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피해자 커뮤니티 등을 찾아 탄원 동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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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6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등 내용이 담긴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 이 통과됐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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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에게 묻고 싶은 말



B씨는 A씨 등 범죄를 꾸민 이들을 만나면 “왜 이런 범행을 계획했나. 이렇게 많은 사람 삶을 주저앉힐 작정이었느냐”고 꼭 따져 묻고 싶다고 했다. 정부 대책에 대해선 “추가 대출 정도 수준에서 벗어나 언제 거리로 나앉게 될지 모를 피해자 거주불안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A씨가 개입한 전세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관련 자금 흐름을 추적해 주범격인 인물과 공범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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