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세계를 흔든 K콘텐츠의 중심에 선 웹툰. 좋은 작품이 많다는데 무엇부터 클릭할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웹툰' 봄을 통해 흥미로운 작품들을 한국일보 독자들과 공유하겠습니다.웹툰 '도토리 문화센터'는 지역 문화센터의 땅을 매입하라는 사장의 특명을 받고 문화센터에 잠입한 15년 차 직장인의 이야기다. 카카오웹툰 캡처 |
'문화센터를 파괴하라.'
첩보 액션 영화 속 비밀요원이 아니라 15년 차 평범한 직장인이 받은 미션이다. 문화센터 자리에 거대한 쇼핑센터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다. 땅부터 매입해야 하는데, 문제는 센터 부지가 공동 소유권자 500명으로 쪼개져 있다는 점이다. 막판까지 소유권을 내어줄 수 없다는 네 명은 모두 문화센터를 지키려는 회원들. 이들에게서 땅을 사들이는 업무에 성공할 수 있을까.
2021년 10월부터 카카오웹툰에 연재 중인 '도토리 문화센터'는 마흔 살의 유니버스 그룹 고두리 부장이 2년 차 직원 오소운과 함께 회사의 특명을 수행하는 얘기다. 신분을 속이고 문화센터 수업에 참가해 부지 소유권자인 회원들에게 접근해 땅을 팔도록 만드는 과정이 코믹하게 전개된다. 아줌마들의 동네 사랑방, 놀이터 같은 이미지인 문화센터를 배경으로 친근한 이웃들 간에 벌어지는 일종의 휴머니즘 드라마다.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다룬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로 이름을 알린 난다 작가가 본격적인 '이야기꾼'의 역량을 보여준 작품으로 최근 단행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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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필요성에 대해 냉소적이던 주인공 고두리 부장은 도토리 문화센터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재미를 찾아간다. 카카오웹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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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뼈대는 고두리 부장의 성장이다. 땅 매입이라는 업무 목표를 달성이 아닌, 취미 없이 일만 하며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온 그의 변화가 핵심이다. "취미는 인간을 아둔하게 만들 뿐"이라는 그의 믿음은 '취미의 성지'인 문화센터에 잠입한 후 서서히 금이 간다. 서예를 배우고 시를 쓰고 뜨개질을 하는 무의미한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다. 첫 수업인 사군자 교실에서 난을 치며 환희를 느끼고 화방 구경을 가며 가슴이 뛴다. "부담 가지지 말아요. 취미라는 게 그래서 좋은 거랍니다. 포기해도 상처가 없지." 사군자 선생님의 대사처럼 생존을 위해 빠듯하게 살아온 고두리는 취미를 통해 '삶의 여유'를 조금씩 알아간다. 또 평균 연령 70세인 센터 회원들과 어울리며 타인에게 곁을 주는 법을 배우고 소원했던 자신의 가족들과 관계도 조금씩 회복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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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마지막까지 문화센터 땅을 팔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사연을 차례로 풀어가는 일종의 휴머니즘 드라마다. 그중 사군자 교실 수강생인 '정중순'은 어린 시절 은사님을 위해 센터를 지키려고 한다. 카카오웹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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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회원들의 살아 있는 캐릭터와 그들의 사연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살짝 이상한 할머니들과 중년의 이야기'라는 프롤로그 속 작가의 설명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중노년 여성들의 모습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여성병원장인 68세의 '정중순'은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미술 선생님을 이제라도 지켜드리려고 사군자 교실에 등록하고 센터 부지도 소유한다. 아이돌에 빠진 '모미란'은 힘든 갱년기를 아이돌 '덕질'로 이겨내려 하는 인물이다. 고두리와 오소운이 이들의 마음을 얻고 결국 부지 매입이란 미션까지 달성하는 과정은 '파괴'라기보다는 회원들의 '고민 해결'이라서 울림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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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들에게 배관공이라는 거짓 신분으로 접근한 '고두리'가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장면 등은 웃음을 자아낸다. 카카오웹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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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특유의 유머 코드, 정감 있는 작화, 따뜻한 세계관 등은 여전하다. 특히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잘 포착해 그려냄으로써 웃음을 자아냈던 전작처럼 이번 작품에도 현실적이면서도 황당한 상황을 전개해 시트콤과 같은 재미를 준다. 정중순에게 자신을 15년 차 배관공이라고 속이고 접근한 고두리가 갑자기 물이 역류한 세면대를 고쳐야 하는 상황에서 어찌어찌 수리를 해내고 탈진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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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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