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간 역사적 사건 현장 지키며 '폭도 가족'에서 '모두의 엄니'로 조명
오월어머니회와 함께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8일 열린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딛고 5·18 투쟁의 역사를 이어간 오월어머니를 조명했다.
가족을 지켜온 아내이자, 누이이자, 어머니인 그들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오월 어머니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5월 항쟁 직후였다.
구속된 사람들의 재판이 시작된 1980년 6월 말부터 몇몇 가족이 단합해 '5·18 구속자가족회'를 결성한 것이 시초였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폭도, 폭도의 가족으로 몰려 어느 곳 하나 기댈 곳 없었던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동지이자 가족이 됐다.
대부분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던 이들은 가족의 석방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5·18은 폭동이 아닌 민중항쟁이었다는 진상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투사로 변신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오월 어머니들은 대법원이 정동년 선생 등 3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내리자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하고 광주 안기부를 찾아가고, 미국 문화원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5·18 구속자들이 풀려나자 어머니들은 석방 운동의 경험을 살려 민주화운동구속자가족협의회(민가협)의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전국에 있는 양심수를 돕기 위한 운동을 벌였고, 크고 작은 민주화 집회에 동참했다.
5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2000년 5월 구속자가족회 창립 구성원들이 모여 오월여성회를 만들자 구속자가족회에서 이어진 민가협 회원들도 자연스럽게 오월여성회로 결집했다.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식당과 찻집을 전전하다 2006년 작은 한옥 한 채를 기부받은 것이 지금의 '오월어머니집'이 됐다.
눈물 흘리는 오월어머니회와 윤석열 대통령 |
오월여성회라는 이름도 오월어머니회로 바꿔 굵직한 역사적 사건 현장에 늘 있었다.
구속자 가족은 물론 희생·부상자의 가족들도 오월여성, 오월어머니의 이름으로 함께했다.
이들은 2016년 촛불 집회에서는 거리로 나섰고, 세월호 참사 땐 팽목항으로 찾아가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모두의 어머니가 됐다.
미얀마 군사 쿠데타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얀마인들을 지지하며 작은 성금을 전달하기도 하는 등 활동 영역도 넓혔다.
5·18 최후항쟁이 벌어진 곳이자 시민군의 심장부로 사용되던 옛 전남도청이 리모델링 과정에서 훼손되자 원형 복원을 위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2016년 9월부터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숙식하며 농성을 벌였고, 삭발·단식 투쟁도 불사하며 정부로부터 복원 약속을 끌어냈다.
현재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일부 오월 어머니들은 현재까지 2천400일 넘게 옛 전남도청 별관을 지키고 있다.
오월 어머니들은 자신의 삶과 한을 담은 이야기를 노래로 제작하거나 그림으로 승화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완전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질 때까지 오월 어머니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 어머니들과 함께 입장했고, 기념식 중에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정곡 '엄니(나훈아)'가 울려 퍼졌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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