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는 최근 올해 예산으로 편성했지만 쓰지 않는, 일명 ‘불용(不用)’ 대상 사업이 있는지 파악에 들어갔다. 불용 예산이 발생하면 다음 해 예산으로 넘기거나, 올해 진행하는 다른 사업에 돌려쓸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16일 “보통 세수가 부족한 해 연말에 불용 예산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는 연초부터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불용 예산 한 푼이 아쉬울 만큼 세수 상황은 비상이다. 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 24조원 줄었다. 4월부터 연말까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세금(284조8000억원)을 걷는다고 가정해도 연말 기준 국세 수입은 371조9000억원이다. 올해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 대비 28조6000억원 부족하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
세수 펑크가 발생할 때 정부가 자주 쓰는 방법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다. 세입 감소분에 맞춰 지출(세출)을 줄이거나, 지출을 그대로 유지하며 세수 부족분을 적자 국채를 발행해 메우는 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추경에 선을 긋는 대신 불용 예산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4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수 부족 대책에 대해 “민생 관련 당초 편성한 예산은 차질 없이 지출할 것”이라며 “재정이 연중 집행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집행 효율화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용 여건이 예전보다 팍팍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불용 예산 규모는 12조9000억원이다. 세계잉여금(6조원) 중 지방교부세 지급 등을 제외하고 세입에 넣을 수 있는 돈은 2조8000억원이다. 둘을 더하면 15조원 안팎이다. 경기가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하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에 따라 연말까지 세수 부족 규모를 15조원 안팎으로 줄인다면 불용 예산으로 (세수 펑크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만큼 불용 예산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난해는 부동산교부세 감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사업 미집행 등 영향으로 불용액이 2014년(17조5000억원) 이후 8년 만에 가장 컸다. 게다가 올해는 ‘건전 재정’ 기조로 예산을 편성해 불용 예산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
불용이 ‘만능열쇠’도 아니다. 예산을 짤 때는 재정 지출이 성장률에 기여하는 효과까지 고려해 지출 규모를 결정한다. 강제로 지출을 줄일 경우 가뜩이나 올해 1%대 수준으로 쪼그라든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세수 결손이 발생하자 추경 대신 불용을 선택했는데, 정부의 성장기여도(0.4%포인트)가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대규모 불용이 발생하는 건 정부가 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꼼꼼히 편성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 써도 될 예산이라면 왜 편성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예정된 재정 지출을 축소할 경우 재정의 경기 대응력을 떨어뜨려 다시 세수 부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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