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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포식자: J팝의 비밀 스캔들' 다큐멘터리 썸네일
일본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쟈니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쟈니스'는 SMAP, 아라시 등 한국 30~40대에게도 익숙한 그룹은 물론,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미치에다 슌스케가 속한 '나니와 단시'까지 일본의 유명 남성 아이돌그룹을 만들어 낸 일본의 연예기획사다. 일본에서 잘 나간다는 남자 아이돌그룹은 모두 쟈니스 소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경우 남성, 여성 그룹을 모두 기획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이마저도 분업화의 영향인지 쟈니스는 남성 아이돌그룹만 만든다.)
일본 아이돌 대부 '성착취'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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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쟈니스' 출신 오카모토 가우안
이 '쟈니스'라는 회사의 창업자 쟈니 키타가와가 요즘 들어 일본 매스컴에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쟈니는 89세인 지난 2019년 당시 뇌졸중으로 쓰러져 숨졌지만, 과거 남성 아이돌 연습생들을 상대로 성착취를 했다는 폭로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영국 BBC는 '포식자: J팝의 비밀 스캔들(Predator: The Secret Scandal of J-Pop)'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쟈니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어린 남자 연습생들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2일에는 쟈니스 출신의 오카모토 가우안이 일본 외신기자클럽에 나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쟈니스 주니어'로 활동할 때 당시 사장이던 쟈니에게 15~20회가량 성적 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오카모토는 "처음 당한 것은 중3인 15살이었다"면서 "쟈니 씨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있지만, 15살에 성적 행위를 한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쟈니의 연습생 성착취 의혹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주간문춘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지난 1999년, 석 달 넘게 관련 의혹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쟈니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남자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심한 성적 가해 행위를 했고 따르지 않으면 데뷔를 시켜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쟈니스는 허위라며 주간문춘을 상대로 1억 엔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은 주간문춘 쪽이 패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거의 일치하고 구체적이고 솔직하며 상세한 반면, 쟈니 키타가와는 구체적 반론 증거 등이 없다"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일본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는 이듬해 확정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 패소 후에도 건재
하지만 쟈니는 2004년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에도 건재했다. 사과 한마디 없이 계속 남자 아이돌 왕국의 신으로 군림해온 것이다. 이번달 기자회견을 한 오카모토가 밝힌 피해 시기가 2012년부터이니 법원 판결 이후에도 성추행은 자행되어 왔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가능했을까. 같은 엔터 업계는 물론, 메이저 언론들이 비판 또는 견제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형적 권력 관계를 이용한 청소년 성적 착취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일본 메이저 언론은 어느 곳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쟈니스 소속 연예인에 많은 프로그램을 의존해온 방송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종영할 때까지 20년 넘게 장수해온 일본의 국민 예능 'SMAP SMAP'는 매주 쟈니스의 SMAP 멤버들이 전적으로 꾸미는 프로그램이었다. 쟈니스 소속 연예인이 나오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은 확보되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드라마, 예능 등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지금도 일본 지상파 방송의 뉴스에 나오고 있을 정도다. 사전에 쟈니스 측에서 쟈니의 성적 스캔들을 보도한다면 소속 연예인이 방송 출연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고 아닌 경고'를 했을지도 모른다.
주류 언론들 보도 가세
최근까지도 보도를 하지 않던 일본 주류 언론이 보도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오카모토의 외신 기자회견이 있고 다음날인 지난 13일 NHK가 해당 내용을 쟈니스의 해명과 함께 보도했고, NTV, TV아사히 등 민방에서도 보도를 시작했다.
신문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포문을 연 것은 마이니치신문. 마이니치는 24일 쟈니 키타가와 성추행 의혹에 대해 칼럼과 사설을 게재했다. 야마다 편집위원은 "쟈니 씨에게 감사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아이들과 부모도 있고 '이미 죽은 사람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피해 신고조차 없으면 유력자의 성폭력은 신경 쓰지 않는 연예계, 묵인하는 일본 사회가 좋은 것이냐"며 일갈했다. '쟈니스와 성피해' 우선 사실관계부터 밝혀야 라는 사설을 통해서는 '꿈을 파는 엔터테인먼트는 시청자와 관객의 신뢰에 기반한다는 것, 관계자는 그 원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 일본
마이니치는 일본 건국 이후 최대의 뇌물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록히드 사건'과 쟈니 성피해 사건과 기시감 있는 국내 보도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위 주류 매체가 아닌 곳(록히드 사건은 문예춘추, 쟈니 성추행 의혹 사건은 주간문춘: 참고로 문예춘추와 주간문춘은 같은 회사)이 가장 먼저 보도를 하고 해외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다음, 외신 기자회견이 나오고 나서야 국내 대형 언론사의 보도가 나오는 패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쟈니의 성가해(性加害)는 본인 사망과 이해관계자의 득실을 따져 죄를 면해줘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다른 언론의 보도를 촉구하고 있다.
일본에는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는 속담이 있다. 안 좋은 일이나 추문 등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린다는 의미인데 이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 문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아직 일본 사회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런 일을 은폐하거나 무관심하게 넘어가서는 또 다른 제2, 제3의 쟈니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향후 일본 언론과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BBC 홈페이지, AP, 연합뉴스)
박상진 기자(nj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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