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상태로 울산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중인 A씨 모습. A씨는 뇌를 너무 많이 다쳐 수술을 아직 못받고 있는 상태라고 가족측은 밝혔다. 피해자 가족 제공. |
“가슴이 찢어집니다. 너무 힘듭니다.”
울산 번화가에서 17일 음주 뺑소니차량에 치어 의식불명상태에 놓인 A 씨(27)의 오빠 김모 씨(35). 사고 4일째인 20일 오후에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 씨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뇌를 너무 많이 다친 A씨는 뇌압이 높아 수술도 못받고 있는 상태다.
“아직 가해자 측에서 찾아와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김 씨는 “동생의 신상정보는 낱낱이 드러났지만 가해자는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다. 가해자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 인권은 소중하지 않느냐”고 흐느꼈다.
만취 상태인 B씨(24)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A씨가 사고를 당한 시각은 17일 오전 7시 27분경 울산 남구 삼산로 현대백화점 앞 사거리. A씨는 대구의 모 대학에 IT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아이들이 너무 좋아’ 유아교육과를 복수전공했다. 이어 1년 전 울산 남구의 어린이집에 취업했다. 사고가 난 이날 A씨는 평가와 교재 준비를 위해 평소보다 30분 가량 일찍 집을 나섰다고 한다.
주변 폐쇄회로(CC) TV에는 A씨가 시내버스에서 내려 직장이 있는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현대백화점에서 번영사거리 방면으로 주행하던 B씨의 승용차에 부딪쳐 넘어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B씨의 승용차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멈추지 않고 직진했고, 비상깜빡이를 켠 채 인근 골목으로 우회전해서 빠져나가는 장면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고가 난 곳은 울산에서 가장 번화가 가운데 한곳이다. 사무실이 많아 사고가 난 시간에는 출근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도주 3시간 만인 오전 10시반경 울산 중구의 집에서 B씨를 긴급체포했다. 사고 3시간이 지났지만 B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0.08% 이상)를 훌쩍 넘는 0.131%로 확인됐다. B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됐다.
음주 뺑소니 사고 직후 찍힌 차량 모습. 조수석 앞 유리창이 파손됐고 보닛이 찌그러지는 등 당시 사고 충격이 드러나 있다. 피해자 가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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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사고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인 이날 오전 1시쯤 친구 한명과 함께 사고 한 시간여 전까지 술을 마셨다. B씨는 경찰에서 “사람을 친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B씨가 집에서 체포될 당시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점에 미뤄 사람을 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추궁하고 있다.
B씨의 차량은 무보험차량이다. B씨는 지난달 9일 중고차를 매입할 당시 한 달 치 책임보험만 가입했다. 애초부터 종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이달 9일부터는 무보험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무보험 차량 사고의 경우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피해자가 장애 1등급 판정이 나면 최대 1억5000만원까지 배상받을 수 있는 정부보장사업이라는 게 있다”고 밝혔으나 A씨의 치료비 충당에 어려움에 내몰릴 수도 있다.
A씨의 아버지는 올 1월 울산의 한 대기업을 정년퇴직했다. 김 씨는 “동생은 주말에는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함께 쇼핑 다니고 영화를 보러 가고, 아버지가 정년퇴직한 날에는 직접 주문한 플랜카드를 보여 주기 위해 밤 12시까지 기다려 감동을 주는 효녀였다”고 말했다. A씨가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플랜카드에는 ‘인생은 60부터라 전해라’ ‘당신은 우리의 로또’ 등 익살스런 글귀가 많아 가족들을 즐겁게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부모님은 사고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 거의 실신해 있다”는 김 씨는 “음주운전자를 보다 강력하게 처벌해 다시는 동생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재락 기자 |
음주운전자 한사람 때문에 단란했던 한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음주운전은 이 사회에서 반드시 퇴치해야 할 악(惡)이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A씨의 쾌유를 간절히 빈다. 그래서 좋아하는 아이들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길….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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