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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휴전선 너머 상대의 마음을 훔쳐라"… 대통령도 가세한 남북 심리전 [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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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대응 심리전" 표현으로 촉발된 논쟁
해방 후 심리전 시작…70년대 초까지 北 우세
90년대 이후 고출력 대북 스피커는 공포 대상
현 정부 들어 심리전 기지개...北도 유튜브 심리전
한국일보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회원들이 2014년 10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날린 대북 전단 풍선이 높이 날아가지 못하고 터져 전단 내용물이 남쪽으로 쏟아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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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통일부도 우리 국민이 (북한의 간첩 행위에) 넘어가지 않도록 대응 심리전 같은 걸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언급한 낯선 용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대응 심리전'이라는 표현이었죠. 심리전은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을 심리적으로 자극하거나 압력을 줘 정치·외교·군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데요.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하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반공 교육을 다시 하겠다는 얘기냐"라는 비판이 나왔죠. 우리 사회에는 트라우마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여론 개입을 위해 벌인 '댓글 사건' 때문이죠.

통일부는 바로 해명했습니다. "최근 간첩사건 등 북한의 불순한 기도에 우리 국민이 현혹되지 않게 통일부가 심리전 대응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건데요. 북한의 대남 심리전 동향이 심상치 않으니 잘 대응하라는 취지였다는 겁니다.

이처럼 물밑에서는 남북의 심리전이 치열합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워 끝없이 무력시위를 벌이며 도발을 일삼는 것이 전부는 아니죠. 특히 1945년 해방 이후 시작된 심리전은 현대사의 질곡 속에 양태를 바꿔 가며 계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직접 맞대고 싸울 수 없으니 심리전으로 휴전선 너머 상대의 마음을 훔치려는 것이죠.

화력전만큼 치열했던 6·25의 '삐라 전쟁'


남북 간 심리전이 본격화한 건 1950년 6·25전쟁 때부터였습니다. 3년간 국군·유엔군 17만여 명, 북한군·중공군 78만여 명이 전사한 지독한 열전이었죠. 전투에서 위력을 뿜은 건 탱크, 전투기, 소총 등 병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삐라'(심리 전단지) 전쟁도 치열했죠. 전화 속에 국군과 유엔군은 삐라 25억 장, 북한군과 중공군은 3억 장을 뿌린 것으로 추산됩니다.

포성이 멈춘 뒤에도 심리전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이 주도권을 잡았죠.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앞섰던 시기라 체제 선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남쪽으로 날린 삐라에는 '장병들이 월북하면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1억 원이 넘는 생활보장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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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북한으로 날렸던 심리 전단물.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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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도 '한강의 기적' 덕에 경제 수준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심리전의 주도권을 빼앗아 왔습니다. 정부는 '물포 작전'(생필품을 담은 풍선을 북한에 띄워 보내는 것)도 벌였죠. 라면, 과자, 사탕 등 먹거리와 담배 등 기호품, 시계 같은 물건을 날려 보낸 겁니다.

체제 대결에서 완벽히 승리한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심리전은 북한에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대북 라디오와 최전방의 확성기·전광판, 전단 등이 '주요 무기'였습니다. "북한이 미군 전략 폭격기보다 우리 확성기를 더 무서워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탈북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삶과 외부 세계를 비교할 정보가 없어 극심한 사회 통제와 정치 박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순종적인 주민들이 대북 방송 등을 듣고 현실을 자각해 돌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북한 지도부를 떨게 만든 요인이었죠.

2015년 北 목함 지뢰 도발에 '확성기' 대응…유감 표명 이끌어 내


최근까지도 가장 위력을 발휘한 심리전 도구는 대북 확성기입니다. 고전적 방식이죠. 처음 전방에 설치된 게 1962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성능과 내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조용한 밤에는 전방에서 20~30㎞ 떨어진 지역까지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내보내는 내용도 다양하죠. 북한 체제 비판과 남한의 우월성 홍보뿐 아니라 감미로운 K팝으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정확한 일기예보로 신뢰를 쌓기도 합니다. 한때는 "북한 접경 지역 농민들이 대북 방송을 듣고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가 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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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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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북한과 대화교류가 이어지던 2004년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광판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확성 방송은 재개와 중단을 거듭하며 북한 정권을 괴롭혔죠. 예컨대 2015년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도발을 하자 박근혜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다시 켰어요. '철부지 김정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독재자' 등 수위 높은 표현을 퍼붓자 북한은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멈추지 않자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안했고, 이례적으로 공식 유감을 표명하는 대신 우리 측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죠.

尹 정부의 '북한 인권' 강조, 심리전으로 볼 여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상호 작대행위 중지를 약속했고, 이후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 대북 전단 살포 시 처벌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조치였는데요. 이 여파로 대북 심리전은 축소됐죠.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심리전이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대북 심리전의 1차 타깃은 '장마당 세대'(1980~1990년대생)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인 1990년대 '고난의 행군'(북한 내 최악의 식량·경제난)과 장마당(시장)을 경험한 세대죠. 사회주의식 배급제보다 시장경제에 익숙했고, 유년 시절에 굶어 죽는 사람들을 여럿 목격해 체제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입니다. 지금 군복무 중인 젊은 장교 중 상당수가 장마당 세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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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북한 여성 인권 사진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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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것도 장마당 세대 등 북한 주민을 겨냥한 심리전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인권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극도로 예민해하는 '아킬레스건'이죠.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인권 실상과 정치 상황을 우리 국민에 잘 알리고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정확히 공유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안 센터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너희가 당하는 인권 탄압은 정상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수는 약 700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때문에 접경 등을 통해 인권 정보가 유입되면 북한 전역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통일부는 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대북 전단 살포를 재개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북한이 무인기 도발을 해 오자 "다시 도발하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죠.

민간 차원의 대북 심리전도 활발합니다. 탈북민 단체 '북한자유화캠페인'은 지난 9일 대북 전단 12만 장과 이동식저장장치(USB) 3,000개를 대형 풍선 12개에 실어 북한에 실어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재단도 플라스틱 물병에 생필품과 USB를 담아 강물에 띄워 보내는 방식으로 북한에 유입시켰죠. USB에는 '사랑의 불시착', '탑건', '타이타닉' 등 국내외 드라마와 영화 등이 담겼어요. 북한은 남한 콘텐츠 등을 유포하면 강하게 처벌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2020년 만들었는데요. 장마당 세대 중 상당수는 처벌 가능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몰래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공안당국의 간첩단 수사…정당 간부 국보법 위반 혐의 기소


북한도 대남 심리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체제 우월성을 대놓고 선전하는 방식으로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워졌죠. 대신 온라인 공간에서 은연중에 남한을 비난하거나 북한을 살 만한 공간으로 묘사하는 '사이버 심리전'에 주력합니다. 심리전 전문가인 이윤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북한 정권이 관여하는 대남 선전 사이트가 100개가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유튜브도 심리전의 전장이 됐습니다. 북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풍요로운' 평양 일상을 보여주는 채널이 등장했죠. 올해 1월과 6월 각각 개설한 '송아 채널'과 '유미의 공간'이 대표적인데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이 무용, 개인 트레이닝(PT)을 배우거나 불고기 '먹방'을 찍고, 호화 워터파크와 유원지에서 노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일부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생활을 평양의 일상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이죠. 이 모든 게 김정은 국무위원장 덕분임을 강조합니다.

또, 지하조직을 활용한 대남 공작도 최근 공안당국의 수사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검찰은 최근 제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 진보 정당의 전현직 간부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는데요. 이들은 이적 단체인 'ㅎㄱㅎ'을 조직해 북한 지령에 따라 '전국민중대회' 등 반정부 활동을 선동한 혐의 등을 받고 있죠.

여전히 휴전 상태인 우리에게 대북 심리전은 필요악입니다. 다만 상대방을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할 땐 역효과가 발생했죠. 심리전에 '진심'인 현 정부가 유념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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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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