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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스프] 나르시시즘 한 사발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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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일상'이라는 콘텐츠 시장

지난번 <어쩌다>에서 진화하는 스냅사진에 대해 다뤘습니다. 특히 '가성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웨딩업계에서 확실한 수요층을 찾고, '폭풍 성장' 중인 스냅 시장이 예약 전쟁과 오픈 런의 최첨단에 놓여있다고도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담은 기록에 대한 욕구와, 또 그 욕구와 직결되는 소비심리는 결혼이나 생일 같이 이른바 중대사(?)에만 몰리는 것은 아닙니다.

SNS가 현대인들의 중요한 소통 창구가 되면서 매 순간 스스로를 어떻게 기록하고, 과시하는지가 중요해졌고 특별한 날이 아닌 보통의 삶, 즉 '일상' 그 자체가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일상'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2.6억 개에 이르고, '일상스냅'으로 검색되는 게시물도 69만 개에 이릅니다.

"이성에게 '선톡' 오는 프로필 사진 찍어드려요"



욕망할 만한 타인이라는 존재가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으로 규정되기 시작하면서 '자기 PR'과 '셀프브랜딩' 영역 역시 수익을 거두는 부가가치 사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상품이 있습니다. 이른바 '인생 샷'으로 불리는 사진을 찍어주는 상품입니다. 다만 소중한 순간을 기억될 만한 사진으로 남긴다는 의미보다, 가공된 '일상'의 모습을 통해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마케팅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가의 장비가 아닌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원하는 목적에 따라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포즈, 스타일링 등 맞춤식으로 조언하는 이른바 이미지 컨설팅 사업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각 업체들은 상품 이용의 다양한 목적으로 '전문직 등 소득이 높은 이성에게 먼저 연락이 오게 하기 위함',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함', '대외 비즈니스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함'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1년 동안 계절별로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세트 상품이 160만 원대에 팔리고 있고,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상룩'을 만들기 위해 사진에 필요한 헤어 메이크업 등 뷰티 사업 제휴도 있습니다. 모두 '그럴듯한 일상'을 만들기 위한 세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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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외모가 잘 나오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한 업체는 인물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고급 호텔'임을 은근히 입증할 수 있는 '호텔 라운지 프로필 사진'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기본 음료 2잔을 주문하고 사진을 찍을 경우는 40만 원, 주문 메뉴가 '에프터눈티 세트'일 경우는 사진을 찍어주는 업체에 50만 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실제의 모습보다 타인이 인식하는 모습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속삭임이 이런 기이한 변종 스냅사진 업(?)의 확장 동력입니다.

시즌 예약이 개시되면 수요가 폭증해 금세 매진되곤 한다는 이런 업체들은 "외모지상주의를 겸허히 인정하고 사진 관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을 신청자의 요건(?)으로 못 박아두기도 합니다.

일상이 콘텐츠? 나르시시즘 권하는 사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수입 명품과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 돈이 많이 드는 취향이 마치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앵글. 특별한 경험임에도 호들갑 떨 것 없다는 태도와 포즈. 이러한 '이른바 일상 콘텐츠'는 하루에도 무수히 벌어지는 생활 최전선의 지리멸렬한 일들을 잘 숨겨두고 있기 마련입니다. 요컨대,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일상은 대개 긍정적입니다.

학자들은 현대인에 만연한 '나르시시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자기애'로도 해석되는 나르시시즘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과 특별함에 집중하는 마음뿐 아니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그로 인한 민감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르시시스트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드러낸 자신에 대한 타인의 구체적인 반응에 갈증을 느낍니다.

지난 2014년에 출간된 한 논문(이선경‧팔로마 베나비데스‧허용희‧박선웅)이 흥미로워서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연구진이 총 28개 연구 집단에 포함되었던 13,450명의 자료를 대상으로 시계열별로 가중치를 곱해 분석해 보니, 한국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이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NPI 지수(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는 40개의 강제 선택 문항으로 이뤄져 있고, 참여자들에게 두 가지 문항 중 자신을 더 잘 설명하는 문항을 택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나는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 "나는 비범하다" 중에 하나를 택하는 등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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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 대학생들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인기 팝송의 가사나 책과 논문 같은 저술에서 주어의 형태와 비중, 출산율 등 사람들이 직접 사용하는 언어를 활용해 나르시시즘 연구를 하고 있는데, 지난 2009년 측정한 미국 청년 세대의 나르시시즘 성향은 1982년보다 약 58%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디바이스의 접근성과 숙련도, 낮은 출산율과 양육 과정에서 다인 가족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온 성장환경,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등 이런 현상의 이면엔 선후와 인과관계가 뒤섞인 다층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자기 전시는 인생의 낭비? 목적에 따라 다르다



물론 전시형 SNS와 여기서 촉발되는 나르시시즘의 긍정적 면을 연구한 논문들도 있습니다. 적극적인 자기 노출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고 긍정적 감정과 사회적 지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데요. '느슨한 연결'이라고 하죠. 실제 만나서 깊은 수준의 대화나 친밀감을 나누지 않더라도 필요에 의해 또는 적당한 호의를 가지고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에 대략의 생활상을 서로 노출하고 공유하는 SNS는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 이미지를 모두 담는 '기록적 자기 노출'과 삶의 긍정적 부분을 화려하게 과장하고 과시욕을 충족시키는 '과시적 자기노출'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타인의 반응'이 행복감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입니다.

신선화‧서미혜(2020)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2-30대 남녀 434명을 온라인 조사한 결과, 인스타그램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또 사진을 올리는지보다 무슨 목적으로 사용하는지가 사용자의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시의 목적일 경우 타인들의 반응(좋아요, 하트)이 저조할수록 확연히 더 행복지수가 떨어졌거든요.

반(反)인스타그램 SNS…생생한 나를 담을 수 있을까



자기 브랜딩과 자기 PR이라는 무한 경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그렇게 가공된 이미지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기존 인스타그램 방식의 전시형 SNS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친구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의 앱도 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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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기자(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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